|
조회 수 7,837 추천 수 10 댓글 0
송수권(1940~ ) '누리장나무 잎사귀에는 낯선 길이 있다' 전문
봄날, 누리장나무 잎사귀에 오면
낯선 길이 하나 있다
누리장나무 잎사귀에 붙어 사는
민달팽이 한 마리
누리장나무 잎사귀 뒤에
제 몸 숨길 줄 알고
잎사귀 위에 올라와
젖은 몸 말릴 줄 안다
붉은 말똥가리 새끼
저 하늘에 떠도는 동안
꽃 피는 그 소리 움찔 놀라고
두 뿔에 감기는 구름
돌들로 감옥을 쌓고
말씀으로 예루살렘이 불타는
정든 유곽의 길을 지나
혁명(革命)의 길을 지나
봄날,
누리장나무 잎사귀에 오면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길이 하나 있다
민달팽이의 걸음을 따라 밭에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이 잎사귀에서 저 잎사귀로 옮겨 앉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상춧잎 하나를 붙들고 몇 시간을 꾸물거렸다.
그런데 연하고 매끄러운 배를 밀며 지나간 자리마다 오솔길 같은
민달팽이의 길이 생겨났다. 제 몸에 다른 속도를 지녀보는 어려움
과 즐거움이 그 낯선 길 위에 있었다.
나희덕<시인>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53,105 | 2023.12.30 |
393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1~4) - 이해인 | 風文 | 239 | 2024.11.08 |
3929 |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 風文 | 186 | 2024.11.08 |
3928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김수영 | 風文 | 681 | 2024.11.08 |
3927 | 양지쪽 - 윤동주 | 風文 | 232 | 2024.11.08 |
3926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6~9) - 이해인 | 風文 | 227 | 2024.11.06 |
3925 |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 風文 | 285 | 2024.11.06 |
3924 |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 風文 | 213 | 2024.11.06 |
3923 | 산상 - 윤동주 | 風文 | 216 | 2024.11.06 |
3922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1~5) - 이해인 | 風文 | 130 | 2024.11.04 |
3921 | 사랑 - 이해인 | 風文 | 196 | 2024.11.04 |
3920 | 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 風文 | 150 | 2024.11.04 |
3919 | 닭 - 윤동주 | 風文 | 147 | 2024.11.04 |
3918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8~21) - 이해인 | 風文 | 687 | 2024.11.01 |
3917 | 비 갠 아침 - 이해인 | 風文 | 640 | 2024.11.01 |
3916 | 미스터 리에게 - 김수영 | 風文 | 144 | 2024.11.01 |
3915 | 가슴 2 - 윤동주 | 風文 | 166 | 2024.11.01 |
3914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3~17) - 이해인 | 風文 | 708 | 2024.10.28 |
3913 | 비밀 - 이해인 | 風文 | 203 | 2024.10.28 |
3912 | 凍夜(동야) - 김수영 | 風文 | 204 | 2024.10.28 |
3911 | 가슴 1 - 윤동주 | 風文 | 162 | 2024.10.28 |
391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7~12) - 이해인 | 風文 | 183 | 2024.10.25 |
3909 | 부르심 - 이해인 | 風文 | 197 | 2024.10.25 |
3908 | 싸리꽃 핀 벌판 - 김수영 | 風文 | 187 | 202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