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1953~ ) '무화과' 전문
꽃 피우지 못해도 좋다
손가락만큼 파랗게 밀어 올리는
메추리알만큼 동글동글 밀어 올리는
혼신의 사랑…
사람들 몇몇, 입 속에서 녹아
약이 될 수 있다면
꽃피우지 못해도 좋다
열매부터 맺는 저 중년의 生(생)!
바람불어 흔들리지도 못하는
무화과는 꽃을 피우지 않은 채 열매를 맺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제 열매 속에 남몰래 작은 꽃들을 피운다.
무화과를 쪼개면 그 숨은 방에서 맺은 씨앗들이 깨알처럼 박혀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화과라는 이름처럼,
중년이라는 나이에는 청춘에서 이월된 쓸쓸함 같은 게 느껴진다.
꽃시절을 지나왔으나 그때는 제가 피운 꽃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