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다 - 손현숙
촉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매일 오르내리는 도선사 길
그 여리디여린 풍경들과 비탈에서 만나게 되는
바람소리, 물결소리, 그리고 가끔씩
나를 만지는 눈과 비, 그리고 천둥,
내 손 떨리게 하는 너의 살결,
그 살에서 느껴지는 나만의 고요,
그런 것들 어느 날 갑자기 몽땅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닌 밤중 잠에서 쫓겨나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를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보랏빛의 망또를 걸치고 건너오는 새벽을 맞는 일뿐
먼지처럼 외로워서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밤
질량을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내 몸을 만질 때
나는 너의 무엇을 기억할까
절망과 유혹과 비애의 육질이 그대로 씹히는 그 생생함은 너의
어느 부위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들일까? 어떨 때는 차라리 무섭게
다가오기까지 하는 감각과 상처, 그 날것의 촉수들은 어디까지
뻗어 무엇을 만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우연히 들른 이번 생을
샅샅이 뒤져서 희롱하고 유희하며 조용히 킬킬거리다, 저항 없이
받아썼던 그 많은 불륜들은 지금 내 어디쯤에 정박해서 살고 있을까,
너는 나 죽을 때까지 기둥서방처럼 내 곁에 붙어 살아주는 것일까?
그러하니 촉감이여, 너는 절대로 해탈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