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율 - 홍신선
얼마나 지겨우면 저렇게 떼로 몰려 선 오리나무들 진저리치는가
이따금 자해하듯 부르르 부르르 사십년생 몸을 떤다
한여름내 허공의 백금도가니 속에서 벼려낸
줄톱이며 삽, 식칼만한 잎들을
마른 신경들을 적막하게 툭툭 꺾어내린다
그 오리나무의 소리없는 진저리의 진앙지는 어디인가
유관부 나이테들이 우물벽인 듯 짜들어간
심부深部에서, 쿨럭쿨럭 기를 쓰고 밑바닥 욕망들을 길어올리느라
흔들리는가 고장난 양수기의 목구멍처럼 쿨럭이며 올라오는
죽음들로 경련하는가
가을 찬 비 속 허리와 어깨에서 문득 고동색 녹물이 흘러나와
번진다. 내부기관의 예리했던 감성이나 기억들
관절의 물렁뼈들 이제는 개먹을 대로 개먹어
아무리 몽키 스패너로 힘껏 조여도 조여지지 않는
이음새 틈새로 산화된 물질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시동 꺼뜨리지 않고 간간히 진저리라도 쳐야 하는가
딱딱 부딪는 이빨 기슭에 몰려와 부서지는 침들이며
부유하는 언어들
선술집 안쪽에 버티고 들어앉은 단골 주정뱅이처럼
나무들 내부 깊이에 아직도 권태 몇이 쭈그리고 있다
오래 너무 살다보면
싱싱한 생에서도 녹물이 흘러나온다
뇌우 뒤의 햇살 환한 하늘 너머 새들이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