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된 시 - 임창아
오랫동안 시를 썼다
시의 수명은 대체로 짧았으나 멈추지 않았다
한 구절을 위해 낭비한 종이들이 한심하게 책상을 점령하였다
그래도 좋았다
방탕하고 음탕한 낱말들이 좋았다
짝사랑이어도 나는 나를 용서한다 온종일
말꼬리나 잡고 늘어져도 일생을 바칠 만한 놀이
라 생각했다 완전하지 못한
삐거덕거리는 한 문장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저만치
화려한 수식어들이 손짓을 한다
입 없는 화자가 구시렁구시렁
문장과 문장 사이 막다른 골목이 나를 유혹한다
속이 울렁거린다 저 구불구불한 리듬을 타고
가자 내 유일한 파라다이스이자 아름다운 감옥으로,
그래도 좋았다
흥청망청한 낱말을 밟으며 나는 오래 늙어 갈 것이다
생면부지 낱말들이 정면으로 와도
비겁하게 고개 따위 숙이지 않겠다
한 호흡 크게 하고 몸을 낮추었다 태산처럼 높이
낯익은 문장이 걸려 있다 마음은
벌써 공중동작에 들었는데
자판 위의 사정은 여전히 도움닫기다
내 것 아닌 것은 항상 그리운 법
한 문장이 그리웠다
몸살나게 지독한 열병이었다 그러다가
괜찮네, 라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나는 선택된 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