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꽃잎 - 설태수
1.
꽃의 심장부는 컴컴한 우주였다.
번개 같은 줄기를 타고와 찰나에 펼쳐진
꽃의 잎맥. 그 중 한 모퉁이가
여직껏 내가 다닌 길이었다.
그 무수한 길들의 변방이 어디인지
변방 너머는 어디로 통해 있는지
종종 궁금하기도 했다.
낮엔 가로수, 밤엔 별빛을 이정표 삼아
생을 소진시킨다면, 혹여
우주의 심연, 꽃의 심장 소리를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무한정 펼쳐진 꽃잎.
우주의 한 꽃잎에 내가 있으니
달리 찾을 그 무엇이 없기도 하다.
2.
팩 팩 팩 팩
압력솥 꼭지가 김을 뿜으며 돌아간다.
들끓는 힘과 맞물린 뚜껑의 압력.
압력이 없으면 끓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가 없으면
뻗어나갈 생도 없다.
오리무중이 명약.
광활한 꽃잎 하나가 온통 안개밭이다.
희뿌연 해가 걸려 있고
발 앞엔 개울 줄기가 나있다.
홀연 등 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안개가 슬쩍 등을 돌린다.
3.
멀리 있는 능선이 가물거리고
군데군데 검은 소나무 숲이 드러났다.
이 산 저 산
능선에서 능선으로
골짜기에서 골짜기로 이어지는 기슭마다
뿌려져 있는 논과 밭.
집 자동차 빌딩들.
모두가 잎맥 같은 물줄기에 엮여 있다.
그대 눈이 빛나고
밤중에도 다들 보석처럼 반짝이는 건
하나같이 물기에 젖은 덕이다.
천지사방
구름과 땅 속으로
돌고 도는 물줄기 덕이다.
4.
맨 끝자락부터 무너지는
꽃잎 가장자리는
미세한 물입자들이 아득함과 교신하는 곳.
꽃의 고요가
마침내 무한으로 출항하는 곳.
세상의 피고 지는 것들.
강물과 바다의 출렁임들.
능선과 산맥의 굽이침도
심장의 고동치는 흐름과 다를 바 없이
각자의 길을 품고 있다.
5.
갑자기 아내가
청소기 한 번 밀어달랜다.
한바탕 집 구석구석 먼지를 제거하면
내 안으로 나있는 길도
한결 깨끗해질 것이다.
가쁜하게 외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쳐가는 옷자락에 흔들리는 꽃잎.
세상 너머 또 다른 별에게로
향내가 흩날린다.
아득히 아득히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