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선墨線 - 박완호
열여섯 무렵, 목수였던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와서도 금세 먼 길을 나서
기라도 할 것처럼 연장주머니를 꽁꽁 묶어 부엌문 옆에 세워두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미쳐 동여매지 못한 주머니가 문바람에 엎어져 연장들이
내장처럼 바닥에 쏟아졌는데, 급하게 그것들을 주워 담다 그만 손바닥에
먹줄로 줄 하나를 긋고 말았습니다
그 줄에 발 묶인 아버지는 내 나이 서른둘이 지나도록 집을 나서지 못하
다, 그해 여름, 편지 한장만을 남겨두고는 때 이른 낙엽이 되어 백곡 산자
락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비누칠에도 지워지지 않던 그 선이 여태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가 그 손
으로 몸을 만질 때마다 내 몸 여기저기에 묵선들을 그어 온 것일까요 해가
바뀔 때마다 내 몸엔 줄이 자꾸 늘어갑니다
아이와 함께 몸을 씻다 문득 쳐다 본 거울 속에는 한 손에 먹줄을 든
아버지가 아이 몰래 내 이마에 황홀을 새겨 놓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