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 - 이무원
글씨를 쓸 때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는
탄생과 죽음이다
긴장의 축복이요 떨림의 마감이다
붓을 따라
하얀 침묵 속으로
별이며 달이며 태양의 그림자가 뚝뚝 떨어진다
여인의 해맑은 피부가
자지러지고 일어서고 움츠리고 춤을 춘다
지천을 모아 강물을 만들고
물소리 따라 흐르니
물소리 들리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운 갈증
등 돌린 얼굴을 찾아
태산준령을 오른다
마침내
끝 자를 쓸 때는
넓은 바다에 뜬 조각배
수평선을 머리에 질끈 감는다
막막할 뿐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분다
잠시 감사와 찬송으로
잘 자란 나무며 풀들을 본다
부끄럽다
끝 자의 한 점은
한 생애의 응어리
화선지의 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