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네트의 거울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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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시간을 거슬러 거울 앞에 당도한 사람
내가 따라온 당신의 뒤통수는 잠긴 자물쇠처럼 무표정했지만,
나를 돌아본 당신의 얼굴엔 아주 오래 전의 또 다른 당신들이
눈물처럼 얼룩덜룩 달라붙어 있었지
우리는 처음으로, 깨어진 조각인 듯 서로를 마주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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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얼굴 뒤에 숨어
살 오른 수탉과 만나러 갈 때면 늙은 엄마를 뒤집어쓰고는
암탉처럼 지저귀었고
한 무리의 구름 떼를 영접할 때면 아버지의 아버지를 불러내
공손한 앵무새를 흉내내느라 이가 몽땅 빠질 지경이었지만,
구름들은 너무 먼 이웃, 내 목소리를 금방 잊어버리곤 하였네
그런 날이면, 거울에게 물었네
―내 얼굴을 돌려주세요.
―어떤 얼굴을 갖고 싶으냐?
거울이 다정한 목소리로 몇 개의 표정을 꺼내놓고 흥정하였네
그를 향해 돌을 던지자, 내 얼굴에 박힌 무수한 표정들이 피처럼 쏟아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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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의 죽은 이파리를 감춘 어두운 호수처럼
당신은 얼굴을 가린 사람
두 다리와 두 팔을 튼튼한 핏줄로 묶어
거울의 뒷면으로 나를 이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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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는
늙지도 않는 얼굴들이 낙엽처럼 쌓여
또 그만큼의 거울을 들여다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