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는 소리가 있다 - 이지엽
굶주린 박새 한 마리가
애벌레 집을 열심히 쪼고 있다
쌍살벌들도 집을 비우고 떠나갔는데
숭숭 뚫린 구멍들만 옹기종기
먼 바다로 길을 트고 있다
누가 저렇게 한 세상 조용히 내려놓고 있나
한 종지의 은니(銀泥)로 번지는 백양사 저녁 예불소리
빈 산에 사흘 동안 눈이 내리고 눈이 녹고
낙엽은 썩어가겠지만
갈참나무는 다 죽은 이파리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제가 내는 신음소리를 귀 세워 듣고 있다
죽지 마 죽지 마라,고 낮게 웅얼거리며
검은 땅속을 흐르는 물소리
마른 뿌리를 적시기도 하면서
오래되어 군데군데 활자가 지워진
무명시집만큼 헐거워진 영혼들아
겨울 숲으로 가보자
바람 지난 자리
연달아 새로 고이는 노란 불빛들의 소리가 산다
그 소리, 얼음장 밑이라도 푸릇푸릇 새순으로 돋아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