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표정 - 박찬세
딱딱해요 툭, 툭 부러지는 골목은
열두 시의 그림자에서 다섯 시의 그림자로 기울어져 가요
아직까지 골목은 소녀를 숨기고 있어요
툭, 골목이 뱉어 낸 비둘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가고
툭, 골목이 뱉어 낸 개가 비둘기를 날려 보내요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골목이 부러진 곳에서 사라져요
아직도 골목은 소녀를 숨기고 있어요
휴지조각들은 왜 잔뜩 찡그리고 벽 쪽으로 굴러가나요
발목이 부러진 소녀가 보는 하늘은 어제의 하늘
골목은 가끔씩 조용합니다
불행해지고 싶어요
골목이 숨긴 소리들은 간지러워서
어느 순간 빵! 하고 터집니다
창문들의 닫힌 입속으로 똑같은 풍경이 들어가고
커튼은 말이 없습니다
미칠 것 같아요
엄마는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다고 말했지만
뽑아 버리고 싶은 건 나였겠죠
골목은 왜 같은 표정인가요,
골목이 소녀를 보여 줍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잠깐 숨기는 동안.
소녀가 단 한번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골목은 소녀 같은 표정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