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필법 - 허영숙
끝물 이파리 모두 떨어져 나간 나무는
y로 총총 엮인 거꾸로 선 싸리비
구름 몇 점 떨어진 하늘을 쓸어낼 듯 서있다
등에 수많은 y를 업고 있는 나무
저것의 힘으로 잎은 피었다 진다
y에 다시 y를 업느라 휘어진 채
허공을 키우고 있는 가지의 획을 읽다가
빈 집 같은 내 등을 읽는다
맨 처음 내가 기댄 곳은 어머니의 등이다
어머니는 등 기울여 나를 업어 키웠고
등이 휘도록 지게를 업은 아버지 덕분에
나도 필 수 있었다
기울여야 업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y의 필법
평평한 내 등에도 누군가
배꽃 같은 슬픔을 기대어 온 적 있다
휘면 무너질까 등 돌린 적 있다
그때 나를 기울여 업어주었더라면
기억의 근처에 옹이를 지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무의 일생은 기대오는 가지를 업고
잎을 피워내다 가는 것
앓다가 터득한 나무의 필법을 따라 쓰는데
등에 누가 업힌다
막 눈 뜨기 시작하는 생장점
y의 순(筍 )이 온 몸에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