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한 내가 하산한 너에게 - 이기와
오랜풍화에 시달려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이 정상의 등짝을 보기 위해
마른 산이 내지르는 따가운 침묵 소리를 듣기 위해
텅 빈 시간의 밑바닥에서부터
넝쿨처럼 기어 올라왔던가
가슴이 붕괴된 벼랑 끝에 매달려
벼랑보다 더 아슬하게 살아가는
저 비탈진 나무들의 뒤꿈치를 보기 위해,
추레한 흔적만 가지 위에 어지럽혀 놓고
어디론가 망명하는 뜨내기 새떼들의
시린 등을 마중하기 위해
칼슘 빠진 기억의 뼈들을 곧추세워 올라왔던가
길 아래로 흐르는 길들을 버리고
한사코 수직으로 깍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려는
이건 대체 무엇에 대한 집착이란 말인가?
막상 올라와보면
어제의 사진들처럼 허름한 몰골들뿐인데
지상에서 올려다보던 부러운 우상들은
이미 하산하고 없는데
한낱 허공의 이름과 맞닿은 봉우리들중 하나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정복하기 위해
발밑 저무구한 길들의 가슴팍을 흠집내며
다투어 기어 올라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