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물병 - 오채운
당신은 내 눈만 바라보며 노랠 부른다
당신의 눈엔 물이 가득하고
나는 그 물을 바라보다
하시시에 몸을 맡기듯
당신의 눈이 아닌 그 물에
내 몸을 맡긴다
당신은 내게 술에 취한 채
너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어
당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물이
그 물이 나를 감싼다
당신은 어둡고 추운 거리에서
얼음 같은 내 손을 감싸잡는다
당신 손은 두꺼운 외투처럼 따뜻하지만
바람은 하시시의 연기를 날려버리고
잡은 두 손을 차갑게 식혀 놓는다
거리는 비어 있고 당신은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내게 차 안에서
앞으로 이 차엔 너만 태워줄게
차 안에 연기와 물이 가득 들어찬다
비틀거리며 물 속을 빠져나가는 차 안에
나는 이미 없다 차에서 내린
내 몸은 연기와 물로만 이루어져 있다
지금 나는 떨리는 손으로
판도라의 물병을 쥐고 있다
뚜껑을 열면 조심스레
넘칠 듯 닫혀 있던 물이 새어나온다
당신의 의자에 앉아보았던 그날
내 눈과 의자에서 알 수 없는
물이 새어나오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