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 이규리
풀밭에서 종일 풀을 뜯고 있자면
소가 풀밭이 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누워서 하늘을 다 차지하는 근원이 되고 싶기도 할 것이다
풀밭을 뺏으면 더는 할 일이 없을 것처럼
소는 제 그림자까지 쥐어뜯고 있는데
종일 풀을 뜯고 있다고 소의 고민이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당신이 내 고민을 뜯어갔어도 소가 지나간 풀밭처럼
어둠의 반경은 넓어졌다
무성한 제 음모를 밀고나니 남자가 떠나더라는 선배는
자신의 머리까지 밀었다
생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밀었다
삭발한 머리에서 새순이 나올 때의 촉감은
까칠한 갈등이기도 했다는데
먹옷 안에 자신의 풀밭을 감추어두자면 얼마나 따가웠을까
그의 바랑 안에서 나온 거웃한 빗 한 자루,
생이 너무 무료해서
어쩌면 풀밭이 소를 따라왔는지 모른다
빗어야 할 업은 지금 넓디넓어서
전생은 따로 둘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