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사람들의 가을 - 이수정
굴참나무야,
이 산의 꼭대기
키 작은 나무들은
벌써 춥다. 손이 시리다
반쯤은 핏빛 단풍이다
산동네, 좁은 길로
연탄재가 뿌려진다
난민촌이라 말하지 말라
굴참나무야,
종점에서 내린 사람들이
비탈길 가로등을 따라
오른다. 금 간 유리창 밖으로
빨강빛 커튼이 조금 나와 있다
일찍 온 바람이
커튼을 흔든다.
어두운 섬이 새를 날리듯
창문 밖으로 흔들린다
서리의 때가 오고,
얼음의 때가 오리라,
굴참나무야,
종점에서 내린 키 작은 사람들이
잠긴 자물쇠를 풀고,
스위치를 올린다
키 작은 사람들의 가을,
창문에 걸린 빨강 커튼이 일제히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