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 김선태
― 흑산도에서
흑산도 사리마을 사촌서당 마루에 걸터앉아
이곳에 쓸쓸히 뼈를 묻은 한 사내를 생각한다
그가 남긴 고독의 무게를 생각한다.
검은 섬 흑산도는 예로부터 천형의 유배지
지금도 술집 여자들이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는 곳
하물며 죄인인 그가 살아 돌아갈 날을 꿈꾸진 못했으리.
한 사람은 강진, 한 사람은 흑산도
각기 다른 행선지가 운명의 차이임을 알았을까
한 사람은 오백 권 서책의 축복으로 남고
한 사람은 달랑 물고기 책 한 권의 쓸쓸함으로 남은
그 커다란 한끗의 차이를 알기나 했을까.
적소인 사리마을은 한참 외진 바닷가
옛날엔 길도 없어 쪽배로나 당도할 수 있는 곳
죄 없이 푸른 바다와 파도소리만 기슭을 치며 우는
거기서 그는 다만 물고기와 벗하며 놀았으니
물고기와 벗하며 고독을 견디었으니,
사람들아, 고독이 물고기 비늘처럼 뚝뚝 떨어지는
그 한 권을 오백 권의 무게와 견주지 마라
유형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월척이라 치켜세우지도 마라
하마 이마저도 후세에 전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존재가 물고기 한 마리만도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 한 권의 무게를 무엇으로 측량하겠느냐.
눈보라치는 한겨울 사촌서당 마루에 걸터앉아
그가 들었을 저 징그러운 파도소리에 몸서리친다
그 극단의 고독과 불행에 또 한번 몸서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