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고영섭
앞니가 여섯 개나 빠진 에미,
에미는 종내기를 여덟이나 낳았다 했다
세상 사람들은 종내기가 너무 많다 하였으나 ......
얼굴이 못 생겨난 셋째 아이는
이승의 하직 인사 한 마디 없이
그냥 그저 영원으로 떠나버린 것이었다
세 살 때였다
이승의 눈매를 저승의 그녀가 데려간 것은
파도처럼 밀려온 붉은 반점은
어린 살결을 한 땀 한 땀 먹어갔다
에비의 혁대가 아이를 내려칠 때마다
이 병신아 죽어버려라를 에미는 계속했고
그때마다 아이는 붉은 똥을 싸질렀다
죽음을 저어하던 그 문듸 애비가
황토길 너머너머 산 언덕 배기에
핏덩이를 매장하고 돌아오던 날
애비를 저어하던 임자 에미는
가난이 웬수라며 땅을 치며 울었다
그 이듬해의 이듬해에
고추를 달고 나올 것이라는 시어미의 말씀에
유산의 문턱에서 덤으로 생겨난 종내기는
벙어리처럼 벙어리처럼 말이 적었고
한(한)도 서러움도 힘있게 꼬아가는 들꽃을 좋아라 했다
날이 날마다 앞산머리에 들어오면
날이 날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세월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갔고
나는 세월을 더듬으며 천천히 지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