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왈츠 - 진은영
뚜껑과 시신을 잃어버린 관 속에서
붉은 샐비어꽃들이 피어날 때
밤이 깜짝 놀란 두 눈썹을 치켜뜨고
묘석처럼 자라나는 담쟁이 잎을 응시할 때
불안이
부서진 어깨뼈의 십자가에서 포도송이처럼 열릴 때
사물 하나를 물고 와 심장의 텅 빈 수조
어두운 피의 찰랑거리는 기억 속에서 헤엄치게 할 수 있다면
다시 낯선 비밀들이
몸속으로 뛰어들게 할 수 있다면
페르시아 도기의 깨지기 쉬운 색깔에 포박되어
미친 양탄자의 춤 위에 올라탈 수 있다면
모든 구멍을 틀어막는 슬픔의 막대기여
무취의 거리를 짓이기며 달려가는 라벤더 꽃잎의 타이어
고대 화폐처럼 닳아버린 달의 입술이여, 사라진 역병이여
어둠의 찢어진 자루에서
썩은 양파들이 굴러 떨어지는 밤
네가 마시는 알코올 속 얼음으로 녹아들기 전에
바이올린 화염으로 흰 자작나무 숲을 다 태우기 전에
그가 왔다
나의 죽은 귓속에서 푸른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