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행 - 김병호
어둠에 부딪친 새떼들과 함께
허공에 무덤을 걸쳐놓고 살았다
한낮의 문장들이 다듬은 둥그런 저녁
물렁한 무덤 속에선
말갛게 여문 비밀들이 향기로웠다
자작나무 숲 응달의 녹슨 音들이
불길처럼 부풀었다
내력을 지운 밤들이 타박타박 번지고
묘석에 새긴 변명들은 흉터로 빛났다
한 사람의 생보다 짧았던 왕국과
어제 패한 나의 사랑,
황혼녘의 별들은 열두 이랑의 눈동자로 수런거렸고
내가 입만 열면
꽃과 뱀이 쏟아졌다
탯줄 같은 첫 새벽의 어둠을 지닌 나는
능선 너머의 파도처럼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벼랑처럼 새벽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