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아래의 관찰 - 이영광
너거 부모 살았을 때 잘 하거라는 말은
타관을 오래 떠돈 나에게
무슨 침 뱉는 소리 같았다
나 이제 기울어진 빈 집,
정말 바람만이 잘 날 없는 산그늘에 와 생각느니
살았을 적에 잘 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무대 위에서 잠깐 열연하는 것은
幕 뒤의 오래고 넓고 깊은 어둠에 잠기기 위한 것,
산다는 것은 호두나무가 그늘을 다섯 배로 늘리는 동안의 시간을
멍하니 앉아서 흘러가는 것
그 잠깐의 시간을 부여안고 아득히 헤매었던 잠깐의 시간을 두 손에 들고
산다는 것은, 苦樂을 한데 버무려 짠 단술 한 모금 같은 것
흐르던 물살이 숨 거두고 강바닥에 말라붙었을 때
사랑한다는 것은, 먼지로 흩어진 것들의 흔적 한 톨까지도
끝끝내 기억한다는 것
잘 한다는 것은 죽은 자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것,
죽은 자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깡그리 죽어 없어진 뒤에도
호두나무 그늘을 갈구리벌레처럼 천천히 기어가
바지에 똥을 묻힌 채 헛간 앞에서 쉬던 생전의 그를,
젖은 날 마당을 기어가는 두꺼비마냥 뒤따라가
그의 자리에 앉아 더불어 쉬는 것,
살아서 잘 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으랴
호두알이 떨어져 구르듯 스러진 그를 사람들은 잊었는데
나무 그늘 사라진 자리, 찬 바람을 배로 밀며
눕기 위해 그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 아무도 보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