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니르바나 - 정숙자
화엄경 첫 장만한 우리 집 거실에서
의자 깊숙이 구겨져 묻힌, 나는
몇 십 년 뒤적거린 사고의 무덤이다
일 년에 한 번쯤 흙 돋우고
더러더러 잡풀 줄거리 들추어내는
그쯤으로 나는 무덤을 돌본다
잔디 뿌리와 머나먼 하늘 사이, 모처럼
정화된 시간이'초롱'하고 소리를 내면
천지에 가득 꽃비가 온다
무덤이야 고요와 고요가 몸 비비는 곳
무덤이야 고요와 고요가 말 나누는 곳
강물들 바다로 달리는 오밤중이면
내 삶의 소란은 한데 모여 고요를 향해 걷는다
제깟 무덤이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고?
그러나 무덤도 까맣게 타고
살아나고 바람을 견딘다, 너호 너호
아주 죽을 죽음을 기다린다
동그라미 어느 날 밭두둑 되고
난장이 되고, 다시 또 청산이 되면, 그때 바로
고요는 고요조차 모르는 고요이려니…
화엄경 첫 장 열린 양력 2월 햇빛 속에서
깃털 민숭한 몸을 오므린다
아슬한 공중으로 새 한 마리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