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의 편지 2-가시’ - 홍은택(1958~ )
둥글게 살아야 해!
힘줄을 팽팽하게 안으로 당긴다
질긴 생각 몇 가닥 목숨껏 움키다
놓치다 반작용의 탄력으로
튀어나간다 진초록 갑옷을
화살촉으로 뚫고나가다 부러진 생각, 생각들
부러진 단층 틈으로 쓸개즙이 돋는다
붉은 사막의 암벽 그늘 아래로 당신
내게 목 축이러 올 테냐고 묻고 싶었지만
‘사랑의 시’가 틀림없다. “둥글게” 사는 것은 제도 안에서 사는 것이다. 1부1처 제도다. 사랑은 그러나 저절로 오는 것.
시적 주체는 ‘제도’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힘줄을 팽팽하게 안으로 당긴다”). 제도를 벗어나려는 힘 또한 만만치 않다. “화살촉”은 제도를 벗어나려는 것에 대한 알레고리. 선인장의 “진초록 갑옷”을 “뚫고 나가”려고 한다. 이기는 것은 그러나 ‘진초록 갑옷’. 큐피드 화살은 진초록 갑옷을 간신히 뚫었을 뿐이다. “가시”로 존재할 뿐이다. 흔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흔적으로 존재하는 사랑도 사랑이다. <박찬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