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증후군* - 조민정
1
대전노인요양원 김영식 할아버지는 만사 오케이다
마음이 언제나 오른쪽으로만 향해 있어
왼쪽의 창을 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이지만
말끝마다 오케이 오케이를 외친다
얼마나 많은 배반이 등을 휘게 만들었을까
자전거에 쌀자루를 싣고
강경으로 금산으로 내달릴 때도
한쪽 심장은 수런대는 설레임도 방기한 채 얼어 있었을까
공책 귀퉁이에 괴발개발 써놓은 '마누라'가
아침부터 한 줄기 슬픔으로 피어올라
교실 문틈으로 손바닥만 하게 디밀던
햇빛을 흐트려놓는다.
할아버지는 끝내
연필을 놓고 꾸부정한 어깨를 책상에 묻는다
까만 연필심으로 꾹꾹 눌러온 곡진한 세월 사이로
조각난 햇빛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린다
2
불임의 징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오늘도 까칠한 입술을 문지르며
한 발짝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옥잠화
간절하게 가슴을 맨땅에 기대보지만
촘촘한 나무 그늘은 너무나 웅숭깊다
촉수가 닿지 않는 영토엔 사철 꽃이 피고 지고
그렇게 한 생애를 차곡차곡 쌓아두는데
온전히 몸이 열리기를 기다려도
햇살의 뒷모습조차 만져지질 않고
쓸쓸한 바람만 드나들 뿐
*이용임의 시 제목에서 빌려옴
계간 시작 2007년 "겨울호"[천년의 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