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 나해철
한 세상 잘 놀다 간다는 말은
나, 게으르게 살았다는 말
나, 죄가 크다는 말
나, 한 세상 잘 놀고 있다
양심은 팬티와 같은 것
가끔 벗어서 세탁기에 빤다
말려서 다시 입는다
한 세상 슬픔을 잊고 웃다 간다는 말은
나, 독하게 살았다는 말
나, 한을 주었다는 말
나, 한 세상 늘 웃고 있다
의무는 런닝셔츠와 같은 것
나의 세탁기에는
땟물과 함께
눈자위 붉은 그리움이
배수구를 통해 흘러나간다
-"2004 시와 사람 겨울"
박명용,최문자,이은봉,이승하 편
"2005 오늘의 좋은 시"[푸른 사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