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 양애경
날마다 한 치씩 가라앉을 때
주변의 모두가 의자 째 나를 타고 앉으려고 한다고
나 외의 모든 사람에겐
웃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 될 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눈이 스치는 곳곳에서
없는 무서운 얼굴들이 얼핏얼핏 보일때
발바닥 우묵한 곳의 신경이
하루 종일 하이힐 굽에 버티느라 늘어나고
가방 속의 책이 점점 늘어나
소용없는 내 잡식성의 지식의 무게로
등을 굽게 할 때
나는 내방에 들어와
바닥에 몸을 던지네
모든 짐을 풀고
모든 옷의 단추와 걸쇠들을 끄르고
한쪽 볼부터 발끝까지
캄캄한 속에서 천천히
바닥에 둘러붙네
몸의 둥근 선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온몸을 써서 나는 바닥을 잡네
바닥에 매달리네
땅이 나를 받아주네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가 나를 지그시 잡아주네
양애경(1956~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바닥이 나를 받아주네』,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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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경 시인은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고 현재 공주 영상정보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인 여류 시인이다. 그의 시는 '편안함과 곤고(困苦)함', '분노와 화해', '일상성과 근원성'의 양극을 넘나든다. 그러면서도 관능과 대담함과 집요함이 있는 시를 쓰고 있다. 이 시는 방밖과 방안의 대칭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방밖이 현실세계를 표상한다면 방안은 자기만의 안식 공간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방밖의 피로가 방안에서 순조롭게 해소되지는 못한다. 방밖에서는 "눈이 스치는 곳곳에서/없는 무서운 얼굴들이 얼핏얼핏" 보이고, "하루 종일 하이힐 굽에 버티느라" 신경이 늘어나고 "소용없는 내 잡식성의 지식의 무게로/등을 굽게"하는데, 안식처인 방안에서조차 "모든 짐을 풀고/모든 옷의 단추와 걸쇠들을 끄르고/한쪽 볼부터 발끝까지/캄캄한 속에서 천천히/바닥에 둘러붙네/몸의 둥근 선이 허락하는 한도까지/온몸을 써서" 바닥을 잡고 바닥에 매달린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이처럼 힘들지라도 우리는 "내일 아침/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하며 '바닥 친화(親和)'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신배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