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객(弔問客) - 김정희
장대비가 쏟아지자
공터 웅덩이 앞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순식간 빗소리와 나만 남았다
발길이 어떤 힘에 이끌린 듯 웅덩이로 흘러갔다
물을 베고 누운 개
엉겨 붙은 잠 한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生을 놓지 못하는 미련줄인 듯
저승과 이승의 사잇문을 가로막은 사슬인 듯
놈의 모가지를 죄고 있는 붉은 노끈자락이
서늘했다
누가
저 젖은 날개를 말리고 딱닥해진 말들을 녹이고
유서 같은 어둠을 벗겨 불어터진 넋을 어루만져줄 것인가
시선을 거두어 돌아오는 길
노끈이 내 발목을 감으며 따라왔다
빗길이 온통 붉었다
그 위에
시구문(屍軀門)을 빠져나온
꽃
한 송이.
김정희 시집"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문학의 전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