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 하종오
가문 날 무밭에 스프링클러가 돌며
물줄기를 뿜자 긴 잎들이 축축 처진다
무보다 시간당 품삯에 재미본
밭주인이 신축 별장에 잡부로 가 있는 동안
떨어지는 물방울의 무게에 눕혀진다
촉촉이 젖은 뿌리가 두둑을 밀어낼 때
밭주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더니
천원권을 꺼내 탁탁 털다가 냉큼 지하수
펌프 전원을 끄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스프링클러가 멎고 뜨건 햇볕만 쏟아지는데
긴 잎들이 스르르 올라간다
왜 이리 오래 틀어 씨펄 전기값 아깝게시리
밭주인이 마누라에게 퍼붓는 소리 커도
무밭은 파릇파릇 넓어진다
하종오 시집"무언가 찾아올 적엔"[창작과비평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