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해
달의 발등을 씻다 -
오래 비워둔 아궁이에 불을 들인다
첫 별을 띄우듯 서둘러 불을 지피면
무쇠 솥 맹물만 설설 끓는 저녁 어스름,
개미귀신의 명주 날개 같은 것이
어디 숨었다 나왔는지
살품을 파고들듯
내려서는 달의 흰 발등
오래 전 정읍의 한 여자
이슬받이로 섰던 그 밤처럼
달은 높이곰 돋아 보름밤
내려선 달의 흰 발등을 씻어보면
우물자리 하나 깊이 패인다
남은 것은
맨발의 감촉 뿐
먼 길 오실 당신이 저 달빛 보시면
얕게 건널 수 있는 강에도 다 젖어 버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