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으며 - 남상진
편안하게 그것을 잡아봐
오른손으로 가볍게 칼을 대고
검지를 축으로 엄지를 밀며
왕복 운동을 하는 거야
세심하게 조금씩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는
좋은 향기와 고운 살결을
덤으로 전해주는 즐거움,
너도 깎아봐
마지막엔 칼자국도 없애고
매끈하게 뒷정리도 하고
잘려나간 흔적은 남기지 말아야지
처음엔 겁도 나고 쉽지 않지만
숙달되고 깨달으면
의도대로 보기 좋게 깎여지는 그것처럼
우리네 삶도 숙달되고 깨달으면
좋은 향기와 고운 결을 만들며
매끈하게 의도대로 살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