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를 까다 보면 - 한병준
대파를 까는 일은
누대를 들춰 보는 끈끈한 의식이거나
감싸주던 임들과의 만남, 또는
여러 갈래의 길고 긴 길을 만나는 일이다
대파에서 뻗어나온 여러 갈래의 길
그 길같이 시들어간
어머니의 어머니를 감싸주던 어머니를 내려놓고
그 어머니를 감싸 주던 어머니를 내려놓고
나를 감싸주고 있는 어머니도 내려놓는다
감싸주던 모든 여자들의 품을 내려놓고
머리에 드리워진 먹빛구름도 내려놓고
눈물나는 대파를 깐다
코와 눈, 귀와 입 모두 뛰어나와 사무친 대파를 깐다
그렇게 흠뻑 눈물을 쏟으며 내려놓다 보면
감싸주고 감싸주며 살아가는
하나로 이어진 끈끈한
모든 길을 비로소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