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 함성호
목련화 그늘 아래서 아니면, 인적이 끊긴 광화문쯤의
오피스 환기구였는지도 몰라
그대와 나라고, 하면은 금방 아닌 것 같은 그대들
술잔에 붉은 입술을 찍어
어린애 손바닥만한 꽃의 육질을 열어
좋은 안주로 삼았었지
그대는 ‘깜찍이 소다’를 마시고
짐짓 취한 척
성냥을 건네주던 그대의 손을 혹은, 라이터
스치며 지는 꽃잎처럼, 흐르던 곡우穀雨
청명淸明도 지나고 우수雨水는 이미 오래전 일
그날 잊지 않으려
마음속으로만 무수히 되뇌던 시를
취한 듯, 꿈인 듯, 끝내 적어두지 못해
다시는 꽃이 진 나무 아래를 찾지 못하는 동지冬至
소설小雪과 대설大雪 동안은 놀고
가장 긴 밤에 나는 하염없이
잠든 나무의 이름을 찾아 헤매었지 잠든 나무?
(우리는 누구나 서로의 슬픈 미래를 본 적이 있다)
단오에는 내가
어떤 향기로 그대의 머리를 감겨주었던가?
바람에 꽃잎을 날리던 입하立夏와 소만小滿 사이
백로白露와 상강霜降의 햇빛도
소용없이 빈 마당에 떨어지는 가좌아파트 베란다
꽃들은 세상을 버리고
봄을 잊은 나무는 괴롭게
저절로 깊은 세상을 열어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