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사의 오후 - 구영숙
법당 꽃살문 앞에 선다
태고의 바람소리 일고
보리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해질녘 스님이 독경소리보다
더 잿빛이었다가
한겨울의 함박눈
사운거리는 소리였다가
용마루에 앉아있는
천년의 침묵을 흔들어 놓는다
함월산 깊은 골짝
솔바람 소리로 귀를 씻고
세상을 더듬어가는 청각으로
굽어진 숲길 따라가면
뱀허리 휘돌리듯 돌아오는 풍경소리
신발 위로 툭툭 떨어져 내린다
모든 것이 멸하는 이 가을
박제가 되어가는
나무들의 언어가 물결친다
산자락 넘어가는
노을 꽁무리에 따라붙은 단풍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