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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文  Jul 31 2022
시간과 마음 - 윤영환 물잔을 기울여도 물은 기울지 않습니다. 중력이 잡아 주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기울면 누가 잡아 주나요. 신이든 술이든 나 이외에 것에 기댈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라도 평정심을 찾는 다면 좋겠지만 또다시 마음이 기울면 어쩌나요. 다시 그것들을 찾으면 되는 건가요? 시간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묘약입니다. 나 이외에 것들에 기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없다면 그것들도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고 잊히며 물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려합니다. 사랑할 땐 시간이 멈추길 바라며 이별할 땐 시간을 거슬러 오르고 싶습니다. 어릴 땐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며 늙으면 시간의 덧없음을 말합니다. 숨 쉬는 동안 우리는 늘 시간을 보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거짓말. 시간은 우리가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보낼 수도 없습니다. 갖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잘 쓴다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공간은 볼 수 있어도 시간은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멈춰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이 시간을 보려 시계를 만든 것뿐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벼를 자라게 하는 것도 시간입니다. 보이지 않게 스스로 흐르기에 막을 수도 흐르게 둘 수도 없습니다. 아니, 보이지 않기에 시간이 흐른다 할 수 없고, 간다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역시 우린 볼 수 없으며 내가 줄 순 있어도 강제로 누군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우리가 눈 감는 날에 시간과 함께 떠난 듯해도 당신의 마음만 갈 뿐 시간은 당신과 함께 떠나지 않습니다. 시간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기에 어디로 떠나지 않습니다. 시간은 생명을 만들고 죽음을 부릅니다. 시간 앞에선 사랑도 영원하지 않으며 슬픔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되뇌기 때문에 영원한 듯하며 마음이 떠올리기에 잊을 수 없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시간은 사람이 어찌하지 못해도 마음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마음을 다스릴 순 없습니다. 마음은 내가 소유할 수 있지만 남이 뺏을 수 없으며 줄 수 있는 것은 나뿐입니다. 유일하게 시간이란 강력한 힘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며 말과 글로도 표현할 수 있고 그릴 수도 있습니다. 시간과 달리 마음은 보여줄 수도 있고 감출 수도 있는 철저한 개인의 것입니다. 남이 볼 순 없어도 나는 볼 수 있고 보여 줄까는 시간이 아닌 내가 결정합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마음으로 이별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음이며 벼를 자라게 하는 것도 마음으로 합니다. 시간을 보기위한 도구는 있어도 마음을 보기위한 도구는 없습니다. 떠나보내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듯해도 머물던 자리는 그 누구도 메울 수 없으며 그 흔적을 우리는 추억이라 말합니다. 따라서 시간은 흔적 없이 가지만 마음은 늘 흔적을 남겨 되뇔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제한되어 있지 않아 드넓고 그 어떤 것도 들어와 살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흔적을 남깁니다. 그 흔적을 기억하지 못함을 우리는 잊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한 번 새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잊었다는 말은 기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차지하는 공간이 많아 마음의 대부분을 내어 주어야 하며 들어오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사랑이 떠나면 그 빈 공간이 너무도 크기에 중심을 잃고 흔들립니다. 따라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이 영원하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마음일 뿐입니다. 사랑이 차지했던 그 큰 흔적은 시간의 도움을 받아 줄어들게 되며 그 과정을 슬픔이라 말합니다. 사랑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슬픔을 겪었기 때문이며 그 어떤 사랑도 기쁘게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 마음은 강제로 빼앗을 수 없으므로 이별을 해도 사랑은 남아 있으며 혼자 남은 사랑은 제 삼자인 시간이 조금씩 덜어가 주지만 흔적을 지워주진 않습니다. 이별의 경험으로 사랑이 줬던 슬픔을 알기에 새로운 사랑이 내 마음으로 온다면 큰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마음의 중심부터 잡으려합니다. 그것은 이별에 대비하는 자리가 새로 생겼기 때문입니다. 새로 들어 온 사랑은 지난 사랑이 앉던 자리에 앉을 수 없기에 그 어려움을 시간이 돕습니다만 결정은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남은 모든 흔적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죽음이 앗아갑니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는 말은 참말이며 잊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글時 : 2008.2.5 16:28 風磬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풍경(風磬)과 나 누리터에서의 이름이 바람의 종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도 하인이 있냐고 묻지만 누리터에서 바람의 종이라 쓰는 것은 風磬 이라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다 보니 바람의 종이라 쓰게 되었습니다. 바람과 풍경(風磬)은 떼어 놓을 수 없죠. 바람이 불어야 풍경이 우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람에겐 풍경은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쇠로 만든 종 따위는 소리 내는 것 외에는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풍경을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람은 불교적인 해석을 할 능력이 없어 풍경의 의미를 모르지요. 바람을 의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은 뭐든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바람이 없다면 풍경은 의미가 있을까요? 조각품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줘야 풍경은 자신의 몫을 합니다. 맑은 소리 내는 아름다운 새처럼 스스로 소리 내지 못하는 한을 품고 사는 지도 모릅니다. 쇠로 만든 풍경에겐 생명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숨 쉬는 존재고 뭐 든 상상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나는 살아있다고 말합니다. 산다는 것은 살아 없애는 의미입니다. 흔히 종이 따위를 불살라 버린다고 하지요? 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태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난날들은 늘 머릿속에 있고, 추억하며 떠올릴 수 있는 우린 멋진 생명체입니다. 풍경도 하루하루를 태울 까요? 생명은 없어도 수 백 수 천 년을 처마 끝에 매달려 울 것입니다. 아마도 죽지 못하는 것이 힘겨울 수도 있겠지만 풍경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은 생명이 없는 존재에겐 의미 없는 말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제대로라는 말을 자주 덧붙입니다.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면서 말이죠. 제대로 사냐는 물음은 잘살고 있는가,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후회 없는 삶을 사는가,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나는 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공원에 핀 꽃에게 제대로 살고 있냐고 물을 수 있을 까요? 생명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잔다리밟고 사는 우리의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가정과 나를 위한 발버둥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요즘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존재성에 대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는 회의감을 갖습니다. 답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믿는 순간 '나' 라는 존재는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기력한 생명을 가진 존재가 돼 버린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스치듯 그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문장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또렷하게 들리고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나의 존재감을 타인에게서 찾는다면 풍경(風磬)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이 있어야 우는 풍경처럼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나를 아는가?' 라는 문장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서양인의 사회적인 존재라는 문장에 나는 심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공동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묻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독이나 수도(修道) 같은 단어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추위에 오그리고 누워 주무시는 어머니를 봤습니다.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하고 무능력한 아들 때문에 이 추운 방안에서 웅크리며 자야만 하는 어머니. 그런 아들을, 못난 아들을 낳으신 어머니를 보며 나는 나의 존재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만족할 만한 해답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잠든 모습에서 나는 스스로 울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바람이 풍경을 스치고 지나듯 내 가슴속을 무언가 스치며 뭉클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나 스스로를 찾기엔 너무나 힘겹습니다. 현실을 외면한 채 나를 찾아 떠나기엔 인연이라는 확률이 나의 수족을 잡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바람의 종(風磬)처럼 평생을 한 곳에 묶여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채비를 끝내고 떠날, 그 날을 기다리는 순간순간을 나는 태우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날은 언제일까요? 오늘처럼 어깨위를 넘으며 감싸는 바람이 몸을 감는 날엔 그 날이 더욱 더 기다려집니다. 저 바람을 따라가고 싶거든요. 2007.01.11 02:57 風磬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느낌으론 하루 만에 가을이 가버린 것만 같다. 거리엔 아직 매달린 잎들이 많은데 겨울이 잎사귀들의 삶을 재촉한다. 아니, 아마 죽어버린 것들이 산 듯 매달려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방 안 공기가 몹시 차다. 곰팡이 냄새나는 옷가지를 뒤져 하나 걸쳤다. 그리 해도 손 발가락이 굳어 감각이 둔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갈 때나 도서관 갈 때, 아니면 술이나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얼어 죽지 않은 것이 여간 묘한 게 아니다. 은행원, 포장마차, 보험설계사, 야구장 행상, 통닭 배달, 프로그래머……. 살며 경험한 직업이 서른 가지 남짓 된다. 생각해보면 조직 아닌 곳이 없다. 노점상을 해도 노점상연합회가 있고, 주변 노점상들과 비위 맞춰야 하고, 회사는 상명하복이고, 다른 직업은 나만의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도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일을 지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혼자 산다지만 이 삶도 소속된 삶이다. 그들이 없으면 난 막막하니까. 그들이 만든 도서관을 가야하고, 그들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찾아가야 하고, 그들이 만든 책, 은행, 가게, 가스, 전기들을 써야 하니까. 이미 주민등록증이 소속된 사람이라 말하고 있잖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주민등록증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천장을 보며 한숨 돌리다가 연기가 보여 당연히 담배 연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입김이었다. 냉방이니 입김이 나는 것은 자연(自然)스러운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말은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 그런데 굳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참고 살아야만 하는 일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도를 통했다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경우다. 사람들은 나를 ‘은둔자’라 하지만 나는 홀로 앉아 세상을 본다. 당신들을 보는 ‘관객’으로 표현해야 맞다. 답답한 건 당신들이다. 지금 내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나는 바지 끝이 닳아 나풀거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25년 지난 바지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시 주워 왔기 때문이다. 다시 주워 오지 못하는 경우라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어머니라도 단벌을 고집하는 자식을 위해 자연스레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벌어진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겨울이 들어선 오늘 저 나뭇잎이 왜 떨어졌는지, 내가 왜 주민등록증을 가졌는지, 추억은 왜 생각나며 왜 그리워하는지,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조차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나무가 의자가 되어 오랜 세월 사람 종노릇 하다가 썩거나 쓸모없을 때 인간에 의해 부서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늙어 죽는 나무와 다르지 않다. 모든 물건은 물건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사 갈 때 당신도 자연스레 버리는 물건들이 있지 않은가? 남들 걸리지 않는 암에 걸리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 반대로 남들 걸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 못 받아들여 발버둥 치는 것을 부자연스럽다 말하지만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자. 나무를 만들지 못하는 존재가 나무로 의자는 만들지 않던가. 의자를 만들어 놓고 나무를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기뻐 울고 슬퍼 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지만, 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참는 것은 보기 안쓰럽다. 자연은 이유이며 그 이유를 거부하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겉치레와 주둥이로 포장하며 사는 것이다. 주둥이 포장의 달인은 자신의 습관을 자연스럽다 우기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나처럼 못된 습관을 고치기 싫어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하는 아집 꾼이 가장 추한 인간이라 말해도 좋다는 뜻이다. 오늘은 어머니 태어나신 날. 전화 드렸더니 “네 고집에 가스 땔 일은 없을 테고 전기장판은 샀냐?” 물으신다. “벌써 샀죠. 바꾼 연탄보일러는 잘 돌아가요?” 라고 말을 돌리며 전선을 통해 생신축하 드린다며 이래저래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전기장판을 살 형편이 못된다. 따라서 샀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다. 주둥이 포장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에 어머니는 말씀, 나는 주둥이, 정치인은 아가리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나라에선 이 세 가지를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 독재의 탄압을 참고 지내는 것도, 참지 못해 뛰쳐나가는 것도, 다음 정권을 기다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의 흐름 안에 여러 갈래로 나뉘지 않는 통일된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의 흐름으로 사상과 철학이 일치된 사회는 없다. 기네스북에 오른 장기 독재 국가 북한을 보자. 목숨을 걸고 태어난 조국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그 탈출을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만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고 죽는 것처럼 배고프면 밥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러우면 탈출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 삶을 순간순간 보며 자연스레 사는지 부자연스러운지를 스스로 감시한다. 살며 작게나마 깨달은 것은 고통이 많으면 많은 삶일수록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다. 내가 그간 한심하게 생각했던, 불쌍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삶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삶인 것이다. 이 사회가, 우리들이 얼마나 포장된 삶을, 포장된 입을 놀리며 사는지 안다면 참으로 부자연스럽게 살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알았다면 이제 이웃으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토닥임이다. 자연(自然)을 순우리말로 옮긴다면 어울림이 아닐까 한다. 지구에서 사람만 자연과 어울리지 못한다. 사람은 자연스러운 생물이 못된다. 자연을 파괴하며 부자연스레 살다가 오리혀 자연스레 흙으로 가는 것이 사람이다. 당신은 자연스러운 사람인가 물으면 부자연스레 듣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포장이 두꺼운 사람일수록 자연스레 입이 화려하다. 그 입에 길든 귀도 자연스레 넘어간다. 부자연스러운 조미료에 길든 혀처럼 자연스레 간사한 혀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혼(魂)이며 후에 깨우칠 때 혼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기당하고 배신당하는 일들이 모두 혼났던 것이다. 부자연의 근본이 혀이며 혀의 수장이 뇌다. 간단하지 않은가? 자연스레 살고자 하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바른 철학이 가득 차면 입은 다물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신바람 주는 말도 신중할 일이다. 세뇌를 깨우침으로 속이며 사는 정치인 같은 종교인처럼 부자연스러운 삶도 없다. 나처럼 깨우치지 못한 사람만이 떠드는 것이지 깨우친 자는 말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깨우친 분이 돌아가셨다. 나는 양평에 갈 때마다 오랜 세월 시집이나 시낭송 CD를 선물로 들고 갔었는데 그분은 밥과 커피를 대접할 뿐 1박2일간 “술 줄까?” 말고는 말이 없는 분이셨다. 질문을 던지기 전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분이셨다. “제가 온 것이 부담스러우신가요?” “왜?” “아니... 말씀이 없으셔서요.” “네가 내게 말을 걸지 않으니 네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더 편해졌다. 분위기 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끝없어 보이는 지식에 감탄하며 끝없는 화두들이 오갔다. 나는 툭하면 차를 돌려 솟대가 높이 솟아있고 삼족오가 문 가득 그려진 형님 집을 찾곤 했다. 살며 그분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분 못 봤지만 지나치게 일찍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스레 가셨다 믿고 싶지만 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부자연스레 보낸 것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자연스레 가야 할 것이다. 가기 싫어하는 발버둥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지듯, 때가 되면 사람도 오가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황한 문장이 자연을 지배하는 썩어가는 세상이다. 자연을 거부하는 부자연스러운 군상들조차 자연스레 사라지리라 믿는다. 종교가 “있다”라는 말은 종교가 “없다”라는 말과 같다. 없는데 있다 할 수 없고 있는데.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있다”라는 말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 있으면서 없는 듯, 없는데, 있는 듯 사라졌는데 다시 태어나는 그리고선 죽어 없어지는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평생을 찾아보라! 인간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는지. 자연은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운 일은 모두 인간이 만든 악행이며 그것은 모두 입에서 시작한다.
風文  Jul 31 2022
아버지와 휘발유 “이 씨벌놈들! 모조리 확 싸질러 버릴 텐게, 짤막하니 유서나 써놓더라고 잉!” 이때가 내가 고3 때인 1990년 가을 이었는데 아버지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앞뒤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천 주안에 있는 건설회사 사무실을 찾아가기 전에 내게 당부하셨다. “나가 밀리믄 니가 살짝 엄호를 혀. 겁만 주라고. 그려도 아니다 싶으믄 너만 튀는 것이여. 뭔 말인지 알것재?” 아버지가 받아야할 밀린 일당이 100일을 넘기자 아버지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들고 나와 함께 택시를 탔다. 아버지를 믿고 따라 일했던 아랫사람들도 일당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울을 나기위해 벌인 살벌한 작전이었지만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찰서에서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 이후론 주먹을 쓰지 않았다. 정말 따라가기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가 남들한테 맞는데 자식이란 놈이 가만있어야 되겠느냐며 응원가로 아버지와 나의 인천행을 배웅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멋있었다. 가난한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말 휘발유를 건설회사 사무실에 뿌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게다가 성냥을 꺼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보통상황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점퍼를 벗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이고 소장님. 드려야죠.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시끄러! 내가 그따구 소리 한 두 번 듣는중 알어? 느그들은 도를 넘었어. 이런 씨벌!” 하시며 정말 성냥불을 켜시는 것이 아닌가. 사장이 신호를 보내자 가슴에 대리라는 명찰이 붙어있는 사람이 다가왔다. “계좌번호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여직원을 시켜서 바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부렁이믄 같이 디져부는 것이여?” “아 그럼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면서 갑자기 성냥불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움켜쥐며 불을 끄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바로 뒤에 서있던 나는 그의 턱을 오른 발로 걷어 올렸다. 그는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뒹굴며 온몸을 휘발유로 적시고 있었다. 사장은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떻게 해야 믿겠습니까. 지금 바로 송금한다 하잖습니까.” 아마도 쓰러진 그 대리라는 사람은 아버지를 해하려 한 행동이 아니라 사무실 불바다가 될 상황을 막기 위한 몸부림 이었을 것이고, 나는 남이 내 부모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것을 막기 위한 지나친 효도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회의실에 넷이 앉아 대화를 시작했고 곧 밀린 100일치의 일당은 입금 됐다. 악연도 인연인가? 이 건설회사 사장과 아버지는 아버지가 암에 걸리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아파트 공사를 맡겼고 단 한 번도 임금을 미루지 않았다. 어려울 땐 빚까지 얻어 아버지 월급을 줄 정도였다.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아야. 뭣하러 패냐 패기를. 그 놈들이 작당하고 널 집어넣는 다믄 뭐랄것이여. 그땐 내가 빌어야 헌당께? 워쨌든 수고해부렀다.” 난 한문의 달인으로 아버지를 알고 지냈다. 아버진 한문도 한글도 명필이었고 항상 한시와 수필을 즐겨 썼었다. 아버지의 유언은 수필집을 내고 싶다는 거였다. “먹고 살랑 게 우짤 수 없어. 너라도 대학은 보내야 쓰잖냐.” 난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고등학교 졸업 후 두 달 만에 하사관으로 몰래 지원했다. 근근한 형편에 내가 대학을 간다는 건 불효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절친했던 친구가 말했는지 그 녀석과 부모님이 서울역 입영열차 승강장에 왔었다. 열차가 출발 할 때서야 부모님은 창밖에서 날 찾았다.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속도를 내는 열차 때문에 어머니가 쓰러지는 것 까지 보곤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난 눈을 감았다. 그 시절 그 건설회사에 뿌려진 아버지의 휘발유는 나의 대학 등록금이었다. 부모의 용기는 자식으로부터 나오고 자식의 용기는 부모생각으로부터 나와야 맞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용서 못하고 있다. 악연은 가족 내에서도 존재 가능하다. 떠올릴수록 부아가 치밀 뿐이다. 이 글을 연재하며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려 한다. 어떻게 퇴고 될지는 모르나 나는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를 빌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글들을 쓰려 한다. 무의미 하게 가고 싶지 않다. 2008.10.30 07:48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기억 속 사진과 영상 인간의 묘한 기능 중 하나는 남겨둬야 하는 일을 반드시 머리에 새겨 두는 습관이다. 이 현상을 ‘우리는 기억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진과 영상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면 건강에 해가 된다. 그 일이 사진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억되고 있다면 그 일은 더욱더 당신에겐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사진과 달리 영상은 당신이 관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남아있으며 이외의 기억하지 못하는 영상들에 대해 당신은 원망 없이 살게 된다. 그런데도 기억하려 애쓰는 일은 거짓을 덧붙이려는 체계적인 작업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입학할 때나 그 이전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영상으로 남아있다면 당신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사진으로 남아있는 사람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입학 때의 기억은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만약에 초등학교 입학식에 불이 나서 소방차들이 몰려왔다면 아마도 그 입학식은 영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별을 늘 동반하는 사랑이다. 사랑하던 시기에 겪던 이별의 아픔은 대부분 영상으로 기억하게 되는데 사랑은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드시 기억돼야 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은 대부분 영상으로 기억한다. 이외의 추억들은 대부분 사진으로 남거나 기억에서 사라진다. 술자리에서 어설픈 한탄을 섞어 떠벌리는 사람을 볼 때가 있는데 대부분 사진 한 장으로 쓰는 소설이다. 사진에 살을 붙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 사진이 아쉬워 영상으로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영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자연재해나 사고 같은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했던 영상보단 떠올리기 싫은 영상을 자주 기억해 내는데, 그 이유는 행복했던 영상과 떠올리기 싫어하는 영상이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불행했던 지난날을 거울로 삼고, 지금 불행한 사람은 행복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갖가지 영상들을 떠올린다. 내 경험상 비교적 영상으로 남는 행복보단 영상으로 남는 불행이 많다. 수많았던 대부분의 일들은 사진으로 남아있고 슬펐던 순간은 기억 속 영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행복이 오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불행이 닥치면 충격적으로 생각할까? 행복한 매 순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묘한 것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 달리, 미래를 꿈꿀 때는 대부분 영상으로 제작한다는 것이다. 꿈꿨던 영상대로 미래가 오지 않으면 사진으로 만들어 처박아 두거나 지워버린다. 왜냐면 미래를 꿈꾸던 그 날을 행복하게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이 순간의 삶을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과거와 미래에만 집착해 만든 사진과 영상은 쓰레기가 되기 쉽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건 대부분 오늘 이 시간에 만족하지 못할 때 꾸게 된다. 한창 사랑할 때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데 그것은 사랑이 이별을 동반하기에 준비하는 계산된 무의식이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살아있다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기억하는 모든 사진과 영상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훗날 오늘을 떠올려 본들 사진 한 장 남아있겠는가. 오늘을 사는 것이 과거가 되는 것이며 미래로 가는 열쇠다. 기억 속 사진과 영상들은 내가 살아있기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심장이 뛰고 있음에 필름을 아낄 필요는 없다. 미래를 꿈꾸라고 쥐어지는 모든 필름은 무료다. 치열하게 찍어대고 기뻐 날뛸 필요는 없어도 행복한 오늘의 미소 한 모금이 눈보라가 치는 추운 오늘일지언정 목화솜 이불이 된다. 추억 속의 영상은 사진과 달리 필요 이상으로 낡으면 더욱 또렷해지는데 그것은 자주 꺼내어 닦기 때문이다. 자꾸만 떠올리면 더 새로워지고 잊었던 영상도 뜬금없이 떠오른다. 매우 충격적인 일일수록 그 영상은 자주 떠오르며 가장 흔한 예가 이별로 만들어지는 영상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은 아니지만, 되돌아가고 싶고 지나가 버린 시간을 향한 억울한 외침이다. 이별이 만든 영상은 종종 술이나 슬픔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시로 남겨지면 노래로 불리는 명곡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머릿속 영사기에서 재생되는 모든 것은 필름이 없어도 만년필 하나로도 그려낼 수 있고, 낙서가 되어 버려지기도 하지만 어떤 이별은 수천 년 지나 지금도 노래로 부르고 있다. 한문으로 쓴 것도 헤아릴 수 없으며 문자가 없던 시대엔 그림으로도 이별을 그렸다. 묘한 것은 인간은 사랑보다는 이별에 대한 사유가 더 짙다는 것인데 사랑할 땐 대부분 이별을 잊고 지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랑이 주는 행복은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이별을 말할 땐 과거형으로 말하고 사랑을 말할 땐 대부분 미래형으로 말한다. 바라보는 시각과 대화 내용이 다른 이유는 슬픔을 잠재우고 행복을 바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기억 속 사진과 영상이 밝은 사람이 미래가 환하다는 말은 옳은 말이고 그런 사람이 겪은 충격은 기쁜 충격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기쁜 충격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필름도 두둑하고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요지에 서 있으며 많은 손님을 만나야 하고 찾아가야 하는 이점이 있다. 그 희망과 펼쳐질 꿈들 안에서 남는 행복이 있다면 나누면 좋지 않은가. 받는 사람이 충격으로 새길 정도로 말이다. 영화감독들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하듯이 내 삶이 족하지 않으면 어두운 영상은 잠시 접고 다시 찍자. 기억 속의 사진과 영상이 당신의 미래에 오롯이 거름이 된다는 걸 안다면 오늘을 행복하게 잘 살면 된다. 10년 후 오늘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평지풍파 없이 참 잘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추천하는 바 추억 속 사진과 영상은 100세나 넘겨 떠올릴 일이다.
風文  Jul 31 2022
어머니와 소주 한 병 군 시절 보통 소주 7~8병정도 마셨는데 중사진급 후엔 주량이 더 늘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16년 전 경남 진해에 포장마차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 이름 끝에 배다리나 복다리처럼 무슨 “다리“가 붙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여튼 간에 그 시절, 소주 열 병을 넘긴 순간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소주를 더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자기 가게에서 초상 치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다른 군함을 타던 동기가 마침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주머니 괜찮아요. 저 인간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무식한 뱃놈이라 생각하시고 제가 책임질 테니 몇 병 더 주세요.“하며 내 옆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아주머닌 불안한 기색이 가시질 않았다. 신고한다는 포장마차까지 있어서 웬만하면 전역할 때까진 다른 포장마차는 가질 않았다. 그 후로 서른 살이 넘어서 5병정도로 줄더니 2002 월드컵 끝나고 4병으로 줄었다. 작년부턴 3병으로 줄더니 지금은 두 병을 채 마시지 못한다. 정확한 날로 말하면 이틀 전부터 한 병 반쯤 마시면 쓰러진다. 자고일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술을 마다하는 지경까지 왔나 싶기도 하고 “세상에 나처럼 미련한 놈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머닌 연탄이나 쌀이 두둑하면 살것다하시지만 난 술이나 담배가 두둑하면 만사가 행복하고 부엌에서 늘 신혼인 바퀴벌레들까지 예뻐 보인다. 언젠가 의정부에 술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빈대 붙으러 갔었는데 어떤 시인이 “술 처먹고 쓴 詩가 詩냐? 그러니 등단을 못하지.“하길래 ”내가 詩쓰는 재주가 없어 술이 대신 써주는 거요.“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봐도 9할은 모두 술로 쓴 詩들이다. 자고 일어나 책상을 보면 여기저기 집어던진 종이들이 있는데 주섬주섬 모아들고 ”어젠 그래도 좀 썼구나.“하며 쓰레기통행과 퇴고행으로 분리한다. 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으면 ”술값이 아깝다 이놈아.“하며 정신 나간 놈처럼 혼잣말을 한다. 요즘이 그렇다. 종이들이 있어도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읽어줄만해야 퇴고라도 할 것 아닌가. 묘한 건 소설은 술 들어가면 한 글자도 못쓴다는 것이다. 어쨌든 시는 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요즘 작품생산실적이 바닥이다. 어느 날은 “술을 마시지 말고 한 번 써보자”하고 앉았는데 백지 위엔 대나무, 기관총, 코스모스, 고깃배...... 몇 시간이나 그림만 그려댔었다. 詩를 쓰자고 마음먹고 앉으면 난 절대 못쓴다. 버스를 올라탈 때나 아니면 얼마 전 도둑고양이가 방에 들어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영상이 스칠 때 자연스레 써진다. 아까운 문장들을 수도 없이 놓쳐버려 요즘은 늘 작은 수첩을 끼고 산다. 글씨가 거의 누워있으면 “대책 없이 술 처먹은 날이구나.”하는 생각에 피씩 웃기도 한다. 왜 창작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나처럼 딩가딩가 쓰면 안 되나? 체중 줄이는 데 최고인 살벌한 퇴고가 기다리고 있는데 왜 창작의 시작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이해불가다. 주신(酒神)의 은총으로 살지만 받은 은총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다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을 게워내 위를 비워야 하고 이젠 게워내지 않으면 불안할 지경이다. 가끔 피가 섞여 나오면 움찔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광경은 아니다. 그러니 늘 어머니께 미련한 놈, 개똥같은 놈, 술로 망할 놈 소리를 듣지 않는가. 얼마 전 가슴이 뭉클해진 일이 있었다. 말벗 찾는 시골 어머니께 갔는데 밭에서 깻잎을 따다가 옷을 입혀 튀겨내 상위에 올려놓으시더니 뒤춤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내가 너 온다고 터미널 나가서 한 병만 사왔어. 술 마실라믄 한 병만 마셔라잉. 니가 건강해야 나가 잠을 잘 잘 것 아니냐. 내가 관세음보살님한테 너 한 병 넘게 마시면 호랑이더러 물고가라고 기도했어. 그란 줄 알고 나랑 약속해. 알아 묵었어? 이 똥개야!” 가방 속에 숨겨 가져간 소주 일곱 병은 말도 못 꺼냈다.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네 시간에 한 번 오는 그것도 하루에 네 번뿐인 버스를 타고 나가 아들 주려 소주 한 병을 샀다는 어머니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논어의 제1편인 학이편에 제자가 공자에게 효가 뭐냐 묻는 장이 있다. 공자는 “오로지 부모는 자식이 아플까 근심걱정이니라.”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식이 아플까만 걱정인 것이다. 하지만 중독자가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나. 결국 가방에 숨겨간 소주는 이틀 만에 모두 바닥났다. 나는 오늘도 불효의 극을 달리며 산다. 오늘 외로운 어머니의 전화 속 목소리는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소주 사다 놨응게 댕겨가. 너 좋아하는 가지나물도 승겁게 해 놨응게......” 나는 한가위 때 약속한대로 한 달에 두 번, 열흘은 어머니와 같이 지낸다. 그런데도 오죽 외로우시면 소주로 나를 부르시겠는가. 돈이 갈라놓은 모자의 한을 풀 때까지 난 하늘과 산뿐인 어머니 집을 오갈 것이다. 내가 술을 벗 삼는 이유는 나 외엔 모른다. 수없이 내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난 더 한심하다. 결혼 못해 저 지경이라 하고, 천하의 불효자식이라 욕한다. 그리도 내가 한심하고 못된 놈 같으면 술 대신 당신이 내 벗이 되면 되질 않는가. 내말이 단어 짜깁기인가? 뻔뻔한 변병이지만 내 또래와는 생각의 공감이 힘들어 가끔 통화하는 사람들도 아버지 벌이다. 살며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참으로 찾기 힘들다. 역으로, 내 벗이 되려면 참을 인(忍)이 적힌 부적을 수천 장은 갖고 있어야 한다. 고로 벗이 없기에 그 대신 주신(酒神)을 모시는 것뿐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되레 단순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은 첫 인상에서 나온다. 나를 사귀며 1년을 버틴다면 그대는 성인(聖人)이다. 단, 종교가 있다면 개종하여 주신(酒神)을 믿어야만 한다. 어떤가? 당연히 벗이 없게 생겨먹지 않았나? 요즘 2층 아저씨가 내 벗 지망생이다. 그러나 난 늘 거부한다. 전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도를 시작할 때 아저씨에게 늘 던지는 문장이 있다. “개종하세요. 꼭 주(酒)님의 은총 받으세요. 주(酒)님은 절 항상 토닥이시고 감싸 안으시며 긍휼히 여기신답니다.” 틀린 말인가? 빨리 죽어 구원받아 그토록 갈망하는 천국가란 소리보단 낫잖은가? 2008.10.27 06:22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통(通)하는 사랑 2 “그냥 갈래.” “왜 그래? 어디 가는데?” “혼자 있고 싶어서.” “태워 줄게. 타.” “아니야. 혼자 갈래.” “......”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타. 태워 줄게.”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말했다. “마음속에 다른 사람 있는 것 알아. 넌 나처럼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아직도 그녀가 날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그토록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그녀는 늘 의심하고 있었다. 왈칵 울분이 터지는 걸 참고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넌 날 믿지 않는 구나!” 차는 삼거리 신호등 1차선에 대기 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도로를 가로질러 보도블록을 밟자마자 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그녀의 차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후 사라졌다. 난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혼자 걷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면 늘 친절해야만 하는, 그녀의 모든 언행을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었다. 싫은 것 보단 쉬고 싶었다. 나는 나만의 시간을 원했다. 그녀를 만난 후론 아무런 작품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힘들다며 내가 힘겨워 할 땐 날 외면하지 않았었나.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나를 절대적으로 보질 않았다. 그녀는 내가 절대적으로 의존하거나 길들여지길 원했다. 그녀는 힘들 때만 날 찾았다. 내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난 늘 하던 일을 접고 그녀를 다독였었다. 하지만 사랑했었다. 사랑 없이 받아들일 순 없는 일이니까. 그녀는 어떤 상상을 했던 것일까. 그녀에게서 내 마음이 떠났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녀 이외에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상상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내가 즐겨야만 하는 나만의 고독시간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난 잡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말 해봐야 그녀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을 테니까. 집까지 걸어오며 나의 뇌가 요동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녀를 믿지 않았었다. 언젠간 떠날 것임을 아는 것처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지냈었다. 누구나 믿음이 사랑으로 변할 때 배신 당해보면 안다. 쉽게 믿지 못한 다는 것을. 사랑은 양날의 검이다. 어떤 방향으로 휘두르든 간에 자국이 남는다. 평생 그 자국을 보며 살아야 하기에 나는 늘 방패를 들고 산다. 따라서 내 품에 안긴다는 건 오랜 전투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방패를 잠시 내려놓고 쉴 때 같잖은 단도로 긁고 지나간 가녀린 검객으로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세뇌하며 산다. 그녀 덕에 방패는 더 두꺼워졌다. 나는 가끔 혼자 있어야만 하는 습관이 있다. 마치 우체국에 몰려든 엽서나 편지꾸러미를 주소지별로 정리하듯 내겐 정리하고 써내려 가야하는 장부가 있다. 홀로 우편물 정리하고 있는 내게 잔소리 하는 상사가 있다면 나는 곧바로 사표 던질 집배원일 것이다. 그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끝으로 그녀는 나와 끝났다. 내가 그녀를 떠올리며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녀보단 내가 더 그녀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보단 내가 더 절대적이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들리지 않는...... - 단편 oooo 中 - 2008.10.23 03:59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화구(火口) 화(禍)는 부르거나 당하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인이 어디에 있든 대책 없이 당하는 것이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으로 당하는 화(禍)도 있지만, 삶속에선 다가올 화(禍)를 예측할 수도 있다. 원인을 안다면 원인을 급히 풀어 면해야 하지만 대부분 화(禍)를 당한 후에 움직인다.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를 하거나 갑자기 종교를 갖기도 한다. 또는 무당을 찾아가 길흉화복(吉凶禍福) 점하여 굿으로 빌거나 부적을 받아오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하기도 한다.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화(禍)를 면하려 애쓴다. 세상은 점점 빠른 속도를 원하고,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여기저기서 개발되어 있고, 어떤 분야 건 하루빨리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느림은 어리석은 단어로 전락했고, 일이 벌어졌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은 느린 자로 도태되어 무리를 떠난다. 무리에 남아있는 자들은 도태 되지 않기 위해 늘 준비되어 있어야하고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마음이 급해지며 급한 마음에 화(火)를 자주 낸다. 이에 화(禍)를 면하기 위한 “처세술” 같은 임기응변에 도움을 주는 책들이 서점엔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랑도 “나 사랑해?”라고 물었을 때 그 즉시 대답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역시나 그 즉시 가버리는 속전속결의 사랑시대다. 뭐든 빨리 말해야 하기에 깊은 말이나 문장은 좀처럼 듣도 보도 못한다. 화(火)가 화(禍)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지만 화(火) 역시 탐욕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이 순간, 이 자리, 이것을 갖고 싶어서 또는 저 순간, 저 자리에 올라야 하기에 잦은 문제는 대충 대화술이나 배워 그때그때 모면하면 되는 것이다. 상대에게 지기 싫어 화(火)를 지르고, 허섭스레기 같은 자존심 때문에 화(火)를 지른다. 내가 내지르는 화(火)는 물같이 사는 사람에겐 늦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자연스러운 낙엽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무같이 사는 사람의 마음을 태울 수 있으며, 불같이 사는 사람의 마음을 복수심으로 채울 수 있다. 따라서 화(火)를 내지르는 불장난은 사람끼린 해선 안 되는 일이다. 고요한 내 마음에 누군가 뜬금없이 나를 해하려 불을 지른다면 세상 그 누가 좋아라고 하겠는가만 내 마음이 물로 가득이라면 그 화(火)도 재울 수 있다. 물은 탐욕이 없어 채워지면 더 채우려 하지 않고, 돌 사이사이를 흘러 다음 빈자리로 흘러가 채운다. 늘 아래로 흐르며 인간이 손대지 않는 한 역류하지 않는다. 끝내 바다에 다다르면 나(我)는 없어지며 바다더러 나를 찾아 달라 떼쓰지 않는다. 이것을 자연(自然 : 스스로 그러하다.)이라 한다. 마음을 물과 같이 한다면 화(火)도 지를 필요 없고, 화(禍)를 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노자의 뜻이 아닐까. 불씨가 남아있는 담배꽁초 하나가 금수강산을 태울 수 있듯이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을 태우고 번져, 걷잡을 수 없는 화(禍)로 돌변해 나를 덮칠 수 있다. 먼데서 원인을 찾고, 가산을 탕진하거나 목숨까지 버려가며 화(禍)를 면하려 하는 어리석은 짓은 말자. 인간이 내지르는 화(火)는 모두 내 몸에서 가장 가까운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땅이 주는 좋은 음식이 들어갔으면 불을 뿜지 말고 고마움을 입으로 흩뿌리자. 그러나 삶속에서 내가 뿜어낸 화(火)가 화(禍)로 돌아와 스스로 피하지 못할 땐, 묵언의 고마움으로 맞이하는 것도 내 화구(火口)를 막는 덕이다. 2008.09.19 00:25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참말이여? 며칠 전 홍대에 문학행사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는데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신도림역에 내려 인천행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데, 계단 중턱에 어떤 할머니가 신문지 한 장 깔고 더덕을 손질하고 계셨다. ‘한 봉지에 오천 원’이라고 종잇조각에 삐뚤빼뚤한 글자로 써 넣고는 안방마냥 차분히 앉아 손질 중이셨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공간 한편에 앉아서 온갖 먼지를 마셔가며 한 봉지라도 팔아보려 더덕봉지를 들고 손 젓는 모습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난 어머니를 웃겨드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숨이 찰 정도까지 웃겨드리는 데는 특별한 대본이나 긴 시간 따윈 필요 없다. 소재도 다양해서 의무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웃겨드린다. 그런데, 올 추석 때 찾아 뵀다가 쩌렁쩌렁 고함소리에 집안이 들썩거린 적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났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께서 밭에서 깻잎을 따다가 한 짐 짊어지고 경동시장이라는 먼 곳까지 가서 깻잎을 팔아보려 했었는데, 시장관리인이 깻잎보따리를 걷어차더란 것이다. 이 골목 저 골목 숨어 다니며 팔았다는 말에 나는 울분이 터졌었다. “몇 푼이나 번다고 그런 델 다녀요 다니기를. 엄니가 거지여?” “아 한 푼이라도 나오믄 느그집 가스비라도 대지 않것냐? 뭐 워떠냐. 다른 할마니들도 다 댕기는 디.” “그래서 또 나가시것다는 말요? 시방?” “아녀. 힘들어서 이잔 안 갈라고. 버스시간 못 맞추면 집에 돌아오도 못혀. 안혀. 안혀.” “한 번만 더 가기만 가봐요. 아주 그냥 그때는 나 죽는 꼴 볼 것이여.” “아 안 간다니께. 젊었으면 모를까 힘들어서 못혀.” 문을 박차고 나오니 추석 보름달이 온 산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이 너무도 밝아 냇물이 미리내 흉내를 내며 반짝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담배 한 개비 물고 씩씩거리다 눈물이 났다. 모시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홀로사시며 아들 가스요금 대러 경동시장까지 가서 모욕을 당한 어머니 생각에 가슴 속 응어리가 터져 울어댔다. 속으로 ‘못난 놈, 못난 놈...‘하며 나를 원망했던 생각이 난다. 추석연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 올 땐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무겁게 반찬과 음식들을 가방 한가득 싸주셨다. 몇 달간 모아온 고기들이라며 말이다. 기차에 올라 싸주신 음식가방을 보면서 싸주시는 족족 들고 오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젠 한 달에 두 번은 올게요.” “참말이여? 바쁠것인디... 일 있으면 안 와도 되야. 한가할 때만 와. 알것재?” “걱정 붙들고 계시쇼. 알아서 올텐게.” “그라고 이잔 데모허는디 가덜 말어. 모조리 잡아 간당께? 뭔 소린지 알재?” 약속대로 내일 어머니께 간다. 말벗도 친구도 돼드리러 말이다. 해 드릴 수 있는 효도라곤 못난 내 얼굴 보여드리는 것뿐 내겐 별 신통한 효도법이 없으니 말이다. 어제 술잔을 비우며 문득 ‘외롭고 힘들게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그대로 두는 건 살인미수 아닌가.’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평생을 걸고 갚는다 해도 못 갚는 것이 어머님은혜다. 오늘날 백발의 어머니들은 한(恨)으로 살아 오셨다. 격동의 세월을 품고 나신 산 증인들이시다. 대한민국이 단시간에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폐허 속에서도 칠전팔기로 일어나 애들 학교 보내며 자식 잘되기만 빌며 교육시켰던 어머니들 때문이다. 스스로 노력해 이룬 것처럼 떠들기 전에 어머니를 살핀다면 고개 숙이지 못할 자식이 어디에 있는가. 겨울로 들어가는 문턱을 지나는 요즘, 방은 따뜻한지도 볼 겸 어머니께 간다. 다음번엔 꼭 내복을 사들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짠하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프지 말자는 생각도 든다. 난 요즘 유일한 내 가족, 단 한 사람을 위해 강도 높게 내 마음을 채찍질 하고 있다. 시나브로 꼭 채찍의 효과가 나오길 내심 기대하고 있다. 2008.10.13 20:40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약속과 사랑 내가 한 약속이란 강의, 읽기, 쓰기,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한 공부들,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것이다. 그것들을 우리는 그냥 할 일이라 한다. 출근하고, 만나고, 일하고, 밥 먹는 것도 할 일이다. 할 일과 내가 한 약속은 차이가 있다. 할 일은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즉 개인 의지가 희석된 된 것이고, 약속은 내가 좋아서 꼭 하고 싶은 일이거나 통(通)한 사이에 맺는 것이다. 할 일에 비해 약속은 구속력이 강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거 맺은 약속들은 파기되기도 하고 새로운 약속을 하기도 한다. 약속을 했어도 지키는 날이 있고 지키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런 약속은 미룰 수 있는 할 일이지 약속이라 말 할 수 없다. 살며 많은 약속을 한다. 부모, 형제, 친구, 결혼, 신(神)과의 약속 등 셈도 어렵다. 약속이 많으면 지켜내기 힘들다. 추악한 변명을 섞어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거나 상대가 이해해줄 것이라 믿고 약속을 저버린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고 신체적 구속력이 없는, 즉 법으로 처벌 불가능한 약속은 어겨도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쉽게 말해 어디서든 뱉고 보는 게 약속이 돼버렸다. 오늘까지 수천 년 동안 권력자들의 입이 더러운 입의 표본이 되어 온 이유 중 지키지 못하는 약속 남발도 한 몫 하고 있다. 사랑도 남발하기에 지키기 어렵다. 어디서든 뱉고 보는 게 사랑이다. 툭하면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이란 말을 많이 할수록 부부관계가 좋아진다는 둥 서양 심리학을 동양에 세뇌하느라 강사들이 진땀이다. 극장을 가도, 연속극을 봐도, 음악을 들어도 매체들은 온통 사랑타령이다. 저항하는 Rock도 없고 비판정신이 스며있는 Rap도 없다. 사랑 신봉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나라가 왜 이혼율은 세계 1위인가.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하고 정리가 쉬운 서양인들의 사랑이 세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약속과 사랑은 함부로 뱉어서는 안 된다. 맺기도 지켜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뱉기 전에 나 자신이 '상대와 내가 통(通)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성을 갖춘 인간인가부터 반성해야 한다.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보편된 지성조차, 보편된 삶의 방식조차 갖추지 못했다면 그리고 몸소 그렇게 실천하며 살고 있지 않다면 무덤으로 갈 때까지 뱉지 말아야 한다. 약속과 사랑은 누군가 원해서 맺으러 오기도 하지만 내가 원해서 맺으러 가기도 한다. 오는 것이나 내가 가는 것이나 현명한 사람은 쉽게 맺지 않는다. 약속 파기와 사랑의 파탄이 잦다면 나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리다. 나는 지키고 상대가 배신을 했다 해도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당신과 맺은 약속, 당신과의 사랑은 내 인생에 있어 기쁨이었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당신은 들을 자격 있는가. 글時 : 2009.09.29 13:41 윤영환
風文  Jul 31 2022
그릇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보편적으로 그릇이 작아 답답하다면 몇 마디는 해줄 수 있다. 단, 지속적으로 볼 관계라면. 변하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기와 증오심에 휩싸인 사람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오해와 증오심으로 가득해 내가 하는 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뿐더러 설득하기 위한 나의 말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찬 그릇마저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그릇이 많으므로 그 많은 그릇 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그릇이려니 하고 두는 것이 좋다.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은 그의 삶이지 내가 온갖 설득과 진실을 토로하면서 그의 삶을 좌우지 하려하는 것은 지배욕이며 소유욕이다. 나는 매번 나의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며 좀 더 큰 그릇을 만들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에 만족하기도 하고 지식과 지혜를 쫓아 그릇을 좀 넓혀 보려하기도 한다. 그릇이 작든 크든 지식과 지혜가 들어갈 자리와 타인의 말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둬야 한다. 비워두지 못하면 진리를 향한 단어나 타인의 충고는 자연스레 쓰레기 취급당하고 만다. 작은 그릇은 나만 생각하게 만들며 내가 최고고 나 위주로 주변이 돌아가야 만족해한다. 조금 더 큰 그릇은 타인을 배려하며 주변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함을 느낀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聖人들은 그릇이 없다. 그릇 자체를 비웃는다. 타인과 나를 하나로 생각하며 타인의 행복을 내가 느끼며 타인의 슬픔도 내가 느낀다.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작은 곳이라도 상처가 나면 세계를 움직여 치유한다. 聖人이 되려 하지 말고 참된 내가되려 살아야 한다. 재물에 나를 팔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 일과 성찰로 성스러운 오늘을 살아야 한다. 聖人들의 삶을 지켜보면 모든 聖人은 聖人이 되려고 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사신 분들이다. 작은 그릇을 죽이지도 않았고 큰 그릇을 위하지도 않았다. 모든 그릇은 참된 나였다. 무거운 고철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어르신이 있다면 뒤에서 밀어 같이 오르는 것이 사람이며 울고 있는 사람과 같이 울고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당신 혼자라면 그보다 슬픈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생명은 동종(同種)과 더불어 산다. 혼자 살아 있다면 그것은 멸종(滅種)이다. 동종이 같이 사는데 홀로 살아가려 하는 것도 멸종으로 가는 길이 된다. '왜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하는 가?'라는 질문의 답은 질문에 있는 '우리'라는 단어가 답해 준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그릇을 언제든 녹일 준비를 하고 살자. 더 넓고 많은 것을 담아 나눌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나의 그릇을 공유할 수 있도록, 늘 나의 그릇은 유연해야하며 한 번 넓어진 그릇이 작아지지 않도록,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가는 사람은 한을 품고 가는 삶이다. 삶을 끝낼 때 깨끗이 그릇을 비워야 '세상에 나와 잘 살다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남의 그릇과 나의 그릇을 비교할 필요 없다. 내 그릇이 유연하다면 비교는 부질없는 짓이다. 되도록 많은 것을 담고 살다 많은 것을 주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 하는 것보다 사랑 받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10.04.05 03:52 윤안젤로
風文  Jul 31 2022
글 중독 문학으로 들어 선 것은 김수영 때문이었다. 詩때문이 아닌 인간 김수영 때문이었다. 나와 똑 같았다. 외곬 같은 성격, 때론 반항, 불같은 마음, 열정, 고난, 시대 반영, 총칼이 들어와도 펜으로 맞서는 인간 김수영. 詩는 잉크가 아니라 몸으로 써야한다는 김수영. 나와 쌍둥이 같다. 내가 그를 닮은 것이 아닌 그가 나를 닮았다. 왜냐면 그에 비해 나는 오만하며 게다가 서로 본적도 없으니까. 꼬인다. 삶이 평탄하지 않다. 하지만 평탄하면 자만으로 휩싸인다. 도리어 이 길이 낫다. 평온하면 詩는 없다. 굴곡이 만들고, 눈물이 짓고, 서러움과 억울함이 모여 이 화창한 봄날처럼 웃으며 활짝 피는 들꽃이 되기를 바라며 퇴고하는 것이 詩다. 소설을 읽으며 우는 사람 봤어도 詩를 읽으며 우는 사람 못 봤다. 느낌으로 읽지 않고 단어나 수사학, 형식만 해석하려 드니 울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더러 우울증이라고 한다. 의사도 나더러 우울증이라 한다. 웃기지 않나? 내가 보기엔 그들이 더 우울해 보인다. 모두 우울하다. 나는 안정된 공간에서 걱정 없이 글만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서, 다 풀어헤쳐 털고 싶었다. 공장을 알아보고 있다. 쌀은 사야하니까. 대부분 12시간에서 15시간 노동이다. 싫으면 가란다. 냉정하게 말하던 그 사람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일을 하며 자투리 시간에 글을 쓰고 싶었다. 아르바이트, 일용직, 임시직... 모두 거부다. 결국 문학은 때려 치워야 할 쓰레기 인가. 카프시대처럼 빨갱이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던 사상 대립시기가 다시 왔으면 한다. 그러나 다른 사상으로, 예를 들어 청교도처럼 일하는 주의와 평화주의 같은 것으로. 아니면 사랑주의와 이해주의로 그것도 아니면 너를아낌주의와 우리아낌주의로 왔으면 한다. 얼마나 행복한 토론이 되겠는가. 대통령 욕한다고 검찰청에 불려가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 국민 모두의 입이 열린 세상. 무슨 말이든 할 말을 하는 세상. 그런 세상. 오늘처럼 폐지를 옮기며 쓰러진 노인을 내가 들어 올리지 않는 세상. 옆 사람과 손잡는 세상. 진절머리 나는 이데아 따윈 말고 그냥 사람 사는 세상. 사람 냄새가 사정없이 진동하는 우리 세상. 네가 아파 내가 아픈 그런 세상. 이사 오기 전 외상값은 다 갚았다. 그 동네에선 나 같은 놈팡이를 뭘 믿고 그리 외상들을 줬는지. 깍쟁이 같은 세상에 아직도 외상술을 주는 사람 냄새나는 괜찮은 동네였다. 땅거미가 진다. 다시 어둠이 오겠지.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종이 위에 심겠지. 그리곤 두고두고 우려먹겠지. 끝내 찢어 버리겠지. 그리곤 또 심겠지. 이것이 내 인생이다. 시를 쓰다가 소설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수필을 쓰다 시가 돼버리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글 중독인. 소주가 달다. 2010.04.18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