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여자들은' - 최승자(1952~ )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는 전화통이 울리길 기다린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던 전화통이
갑자기 울릴 때 자지러질 듯 놀란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결코 울리지 않던 전화통이 갑자기 울릴까봐,
그리고 그 순간에 자기 심장이 멈출까봐 두려워한다
그보다 더 외로운 여자들은
지상의 모든 애인들이
한꺼번에 전화할 때
잠든 체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다
오오, 전화 기다리는 일의 지옥. 오늘쯤부터 잠들어 성탄절 다음날에나 깼으면 하는 외로운 흑설공주들의 휴대전화가 오늘부터 갑자기 요란히 울려대길. 분홍빛으로.
김경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