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남자 - 박소란
노트 위에 평생을 골몰했네
힘겹게 써 내려간 다열종대의 행과 행 사이에서
그는 자주 길을 잃었네 어쩌면
마흔 일곱 혹은 여덟 번째로 향하는 급커브에서는
펜을 꺾었어야 했는지도 돌연
야근이 끝나고 돌아갈 곳이 떠오르지 않던 부랑의 밤
어둠 쪽으로 한껏 몸을 낮춘 옥상 난간에 서서
그는 실로 오랜만에 휘파람을 불었네
쇳 쇳 쇳소리가 자맥질치는 허공을 응시하다 그대로 풍덩
어둠 속에 온몸을 찔러 넣었네, 넣을 것이었네 그 순간
그가 본 건 한때 꾸었던 푸른 꿈의 심상들
누구나 한번쯤 노래했던 별, 별 같은 것 우수수
아무렇게나 떨어져 야윈 꽁지를 파닥이고 있었네
그는 왜 마침표를 찍지 못했나 이토록 오래 주저해야 했나
어떤 비유로도 건널 수 없는 나날들을 수없이 쓰고 지우며
절망의 습작만을 되풀이하며
그는 살았네 산다는 건 정체불명의 메타포
조악한 모음과 자음으로 띄엄띄엄 써 내려간
비문투성이 시, 아무도 읽은 적이 없는
그는
아직 노트를 덮지 않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