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 백순자
바람에 머리카락 쓰다듬는
고뇌하는 도시인에게
사색의 잔을 권한다
바람에 몸 흔들리는
마른 겨울 나뭇가지에게
정처없이 날리는 낙엽에게
사색의 잔을 권한다
아직도 껍질을 벗지 못하고
번민하는 사람아
원시로 돌아가라
인간도 시인도
함께 부를 수 있도록
존재의 실체로 돌아가라
고뇌하는 삶이 있으므로
인생도 아름답고 시(詩)도 아름다운 것을
모든 고뇌는 이 공간에
같이 존재하므로 시작되는 것을
다시 찰흙 같은 어둠이 우주를 덮는다
찬란하게 빛나는 화려한 모습을
밝게 드러내 보일 준비를 위하여
이 밤도 바다를 건너
야산을 홀로 넘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련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람에게 가 닿아
따뜻한 봄날 꽃가루처럼
사방으로 흔적없이 흩날리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