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빛나는 거스름돈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시간이 좀 남아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다가 매점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일찌감치 극장안으로 들어섰다. 내 좌석은 중간 자리였다. 좌석표를 들고 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우왕좌왕 오가고 그 사람들 틈에서 간신히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화면에 무수한 광고들이 휙휙 지나갔고 나는 과자를 오물거리며 멍하게 광고들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영화시간이 다 되었는지 어느새 좌석은 꽉 매워지고 극장안은 한츤 더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그때 극장 앞문이 열리더니 한 아주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주머니는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맨 앞자리부터 한칸 한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아마 자리를 찾는 관객이겠거니 했는데 아주머니는 사람들에게 종종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차츰차츰 뒤쪽으로 움직이셨다. 내가 앉은 중간 좌석 근처에서 아주머니는 허리를 펴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셨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물으셨다. "아까 매점에서 과자를 사 간 아가씨 아닌가?" 그때서야 그 아주머니가 매점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머니는 "어여 이것 받아"하시며 손을 뻗어 동전을 내미셨다. "아까 과자 사고 거스름돈을 덜 주었어." 돈을 받고 나니 아주머니는 벌써 극장안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손을 펴 보니 오백원짜리 동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꼭 쥐고 있었다. 양성혜 님/서울시 강동구 길동
Board 삶 속 글 2006.12.17 風磬 R 5195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지현이가 날마다 지각하는 이유 무거운 책가방을 드에 양손에는 실내화 주머니, 도시락 가방, 준비물 가방을 주렁주렁 들고 아침마다 정류장까지 기를 쓰고 달리던 중학교 시절, 그때 나는 마치 달리기 선수가 된 듯했다. 일분만 늦어도 버스를 놓치고,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달려야 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달려서 버스에 오르면, 옆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이 꽉찬 사람들 때문에 또한번 숨이 차 오르곤했다. 아침마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지친 나는 고민 끝에 한가지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 몇 명을 모아 봉고차를 빌려 타고 다니기로 한 것이다. 내 생각에 찬성하는 친구들이 제법 많아 우리는 바로 봉고 한 대를 빌릴 수 있었고, 그 지긋지긋한 만원 버스에서 해방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봉고차로 함께 통학하던 지현이가 조금씩 늦게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현이를 기다리느라 꽤 여러번 지각할 고비를 넘기곤 했는데, 결국은참다 못한 친구들이 지현이에게 불만을 털어 놓으며, "왜 자꾸만 늦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나 지현이는 얼굴만 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우연히 지현이와 단둘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현이가 늦잠 때문에 지각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지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고등학생 오빠가 저만치 내 앞에서 힘겹게 걸어가는 것이 보여,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오빠 앞을 휙 지나쳐 바쁘게 걸어가는데 난, 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더라구. 열심히 걷고 있는 오빠 옆을 빠르게 지나쳐 버리면 그 오빠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쑥스러운 듯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지현이가 그날따라 더 예뻐보였다. 임형선 님/전남 순천시 가곡동
Board 삶 속 글 2006.12.15 風磬 R 4936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아가의 이가 다 날 때까지만 내가 사는 곳은 조그만 아파트 단지이다. 우리 집 바로 아래층으로 지난주 일요일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어린 아기를 둔 젊은 부부가 부지런히 짐을 날랐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분주하던 아파트 단지안은 잠잠해졌다. 저녁을 짓고 있는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옆동에 사는 이 동네의 소식통인 지훈 엄마였다. 지훈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다 보니 그 새댁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무슨 이야길 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일까 궁금하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딩동'하고 현관벨이 울렸다. 급히 전화를 끊고 나가보니 그 새댁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온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아기가 이가 나기 시작하서든요. 그래서 밤이면 잇몸이 가렵고 아픈지 막 울어대네요. 혹 아기의 울음 소리 때문에 잠을 깨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얼마 동안만요." "그 얘기를 하려고 이 추운 날 집집마다 다니는 거예요? 새댁도 참 물 그런걸 가지고....." 새댁은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날 밤 새댁의 말대로 자지러지는 아기의 울음 소리가 아파트 단지안에 울려 퍼졌다. "웬 아기 울음 소리지?" 남편이 부스럭 거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새로 이사 온 아래층 아기예요. 아기가 이가 날 때라 자꾸 운다고 새댁이 집집마다 인사를 다니지 뭐예요. 새댁이 참 예의가 바른 사람같아요. 그러니까 아기의 이가 다 날 때까지만 참아요" 나는 남편에게 저녁에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해 주었다.남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늦게까지 아기 울음소리는 계속됐지만 어느 누구도 잠을 깨웠다며 화를 내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김미순 님/강원도 속초시 교동
Board 삶 속 글 2006.12.14 風磬 R 4801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반장님예, 보내 주이소 "판수야! 오늘 잔업이다." 갑작스런 반장님의 말에 저는 반사적으로 '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중요한 수업이 있어서 꼭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한 분이 결근을 해서 그일을 대신하고있었는데 잔업까지 걸려 학원을 못가게 되다니.... 그렇다고 일손도 부족한데 먼저 간다고 말할 수도 없어 마냥 애만 태웠습니다. 군 제대 후 돈보다는 전문지식을 얻어야 겠다는 생각에 스물 다섯 나이에 입시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 동안 잘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나약해지면서 외로움과 답답함이 밀려왔습니다. 저녁 식사 후 잔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제 사정을 아시고는 "을은 내가 하면 돼, 김군은 빨리 학원 가라. 배우는게 더 중요하지. 내가 할 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같이 일하시는 분들도 내 얘기를 전해 듣고서 반장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반장님예, 김군 보내이소. 우리가 조금씩 거들면 되니까 학원에 송부하게 보내이소." 평소엔 자신들의 일만으로도 벅차고 힘들어 했지만 이번에는 서로 맡겠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특히 쌀쌀맞던 정양이란 아가씨마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장님예, 지가 하믄 됩니더. 보내 주이소." 순간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다음 날, 힘들게 일했을 그분들의 모습은 정말 건강해 보였습니다. 김판수 님/경남 양산군 상북면
Board 삶 속 글 2006.12.13 風磬 R 4327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사람들 사이에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이십 년만에 보내온 소포 "소포요! 도장 가지고 오세요." 우체부 아저씨였다. 도장을 가지고 나오니 꽤 큼지막한 꾸러미를 내밀었다. 주소도 맞고 분명 내 앞으로 온 것은 맞는데 겉에 쓰인 '안춘기'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뜯어 보니 그 속엔 질 좋은 면양말이 어른 것, 아이들 것 해서 가지가지 들어 있었다. '양말? 안춘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혹시나 싶어서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춘기가 네게도 양말을 보냈어? 녀석두, 왜 너 중학교 다닐 때 잠시 우리와 함께 살았잖니."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난 그제서야 안춘기라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기는 촌수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아주 먼 친척 되는,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의 조카뻘 되는 사람이었다. 춘기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혼자 춘기를 비롯한 일곱 형제를 키우셨는데 한 입이라도 줄일 요량으로 춘기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양말공장에 취직시켰다. 딱히 있을 만한데가 없던 춘기는 우리 집에서 묵게 되었다. 이른 아침 동갑내기인 춘기와 나는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들고 함께 집을 나섰다. 그 애는 양말공장으로 나는 학교로, 낮에는 양말공장에서 밤에는 무슨 식당에선가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춘기는 우리 집엔 사과 한알 사오는 일이 없었다. 공짜로 재워주고 먹여 주어도 어머니는 춘기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춘기는 양말 꾸러미를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공장에서 흠이 생겨 버려야 할 것들이었는데 딴엔 자식처럼 대해 주는 어머니에 대한 보답이었던 듯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양말이 한짝도 없어서 어머니는 그 양말을 다시 깁고 꿰매야 했다. 그것을 본 춘기가 몹시 미안해 하자 어머니는 "춘기 때문에 온 식구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겠다."하시며 춘기의 어깨를 다독거리셨다. 그 춘기가 소포를 보내 온 것이다. "그래, 그 춘기가 양말공장 사장이 되었다는 구나. 그간 연락도 없다가 이십년 만에 전화를 해서는 네 주소도 묻더라. 그래서 알려 주었는데......" 김희정 님/서울시 노원구 상계2동
Board 삶 속 글 2006.12.12 風磬 R 3928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선생님, 점수 잘못 매기셨습니다 때르르릉, 드디어 시험이 끝났습니다. 오늘 시험은 고등학교 삼학년인 내가 마지막으로 치른 학교 시험이었습니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조금 더 잘 볼걸 하는 후회가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일주일 동안은 점수 확인을 해야 했습니다. 내 점수를 직접 듣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영어 시간, 선생님은 들어오시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주관식 문제 점수를 말해 줄테니 각자 매긴 점수와 맞추어 보세요." 나의 가슴은 콩닥콩닥 떨려 왔습니다. '혹시 주관식을 잘못 쓰지는 않았을까? 아니, 한칸씩 밀려 썼으면 어떡하지.....' 친구들의 점수가 들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점수는 내가 알고 있는 점수보다 삼 점이 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점수는 내가 알고 있는 점수보다 삼 점이 더 많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지난번 치른 시험과 내가 매긴 기말 시험 성적을 평균해 보니 일 점 차이로 성적이 '우'에서 '미'로 떨어졌는데 뜻밖에 삼점이 더 나왔으니 내 성적은 '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나는 답안지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답안지를 훑어보니 역시 선생님께서 채점을 잘못하셨습니다. 하나를 더 맞게 동그라미를 치신 것이었습니다. '일점, 일점 때문에.....' 나의 마음은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서 답안지를 거둘 테니 가지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다리가 마구 떨렸습니다. 마침내 선생님 앞에 답안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나는 잠시 답안지를 내려다 보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 잘못 매기셨습니다." 이로써 나의 영어성적은 '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늘을 날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이명애 님/경북 경주군 내남면
Board 삶 속 글 2006.12.11 風磬 R 4894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전교회장 수원이 새 학기가 시작되어 처음 수원이를 보았을 때, 그 친구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그의 못난 얼굴을 친절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수원이에게는 말하는 도중 자꾸만 입맛을 쩝쩝 다시는 습관이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종업식 날에 떡 파티를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수원이가 짝궁과 얘기하는 모습을 보시고 "저 녀석은 벌써 입맛을 다신다." 며 면박을 주셔서 우리 모두는 배를 움켜쥐며 웃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원이는 말할 때 유난히 침이 많이 튀는 것을 방지하려고 자주 입맛을 다시다 그리 되었다고 한다. 가을 소풍 때였다. 선생님께서 "사진 찍을때는 입을 벌리고 크게 웃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나온 사진을 보니 수원이 혼자만 입을 크게 볼리고 웃고 있는 것이었다. 입 안에 먼지 들어가겠다고 놀리자 수원인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의 웃음이 인기를 끌었던지 수원이는 그 해 전교회장에 당선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 오락실 앞에서 우연히 수원이를 만났는데 두명의 친구가 수원이의 두 팔을 잡아 당기고 있었고 수원이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낑낑대며 버티고 있었다. 뛰어가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수원이는 도움을 청하듯 말했다. "나는 전교 회장이다. 내가 오락실에 가면 전교생이 다 간단 말이다. 제발 뇌 줘!" 하는 수 없이 나는 수원이의 허리를 붙잡아 못 가게 도와 줄 수밖에 없었다. 졸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수원이가 전화를 해왔다. 그는 자못 진지한 말투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나 요즘 감정이 너무 메말라 걱정이다. 졸업식 땐 꼭 눈물을 흘려야 할 텐데....." 그의 소박한 소망을 듣는 순간 졸업식 날 그의 모습을 금방 상상할 수 있었다. 너무 울어 퉁퉁 붉어진 눈을 한 그를...... 김효열 님/부산시 부산진구 부암2동
Board 삶 속 글 2006.12.10 風磬 R 4387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몽순이의 변화 내겐 미정이라는 친구가 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애는 얼굴이 조금 못생긴 편이다. 애칭으로 '몽순이'라는 별명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 애가 어느 날 호들갑을 떨며 어제 슈퍼에 갔다가 진짜 근사한 남자애를 만났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몽순이의 얘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몽순이가 "아까 너희들이 왜 웃었는지 안다. 그렇지만 영선아, 난 그 애가 정말 좋아. 그냥 봤을 뿐이지만 느낌이 좋은 애였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몽순이의 우울한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래 몽순이라고 사람 좋아하지 말라는 법 있나? 내가 도와 줘야지'결심하곤 그 남자를 수소문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애는 내가 아는 남자였다. '계집애 눈은 높아가지고.' 나는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날 몽순이에게 내가 도와 주겠노라고 하자 그녀는 볼이 상기될 정도로 기뻐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 걱정은 시작되었다. 그 남자애에게 차마 몽순이 얘기를 꺼내지 못한 것이다. 이때부터 나의 거짓말이 시작되었다. 몽순이에게는 "그 남자애가 너의 조용한 모습이 괜찮다고 하더라" "너 머리결이 예뻐 보인데" 같은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거짓말로 몽순이에게 라면이랑 잡다한 과자를 얻어먹었다. 그러나 날로 커지는 몽순이의 기대에 내 걱정도 그 만큼 커져만 갔다. 그러기를 두 달, 양심에 가책이 되어 도저히 참을 수 없던 나는 그 남자애에게 용기를 내어 사실을 털어놨다. 사정을 들은 그 애가 뜻밖에 한 번 만나겠노라고 했다. 나는 몽순이에게 으스대며 약속장소를 알려 주었다. 그때 몽순이의 표정이란...... 드디어 약속한 날이 돌아왔다. 그날의 몽순이는 내가 알고 있던 몽순이가 아니었다. 몽순이는 변해있었다. 조신한 언행이며, 진짜 반짝이는 머리결하며.....정말 예뻤다. 그 남자애도 처음엔 조금 실망하는 것 같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호감을 보였다. 결과는 물론 해피엔딩이었다. 나는 지금 내 거짓말이 몽순이를 변화시켰다고 믿는다. 몽순이는 그 남자애가 조용하고 지적인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하루에 책을 세권 이상 읽었다고 한다. 오! 놀라운 사랑의 힘. 지금 생각해 보니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준 그 남자애에게도 고맙다. 사람의 외면보다는 내면을 보아 주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그 남자애와 나만의 비밀이지만 글세 만약 이 글이 책에 실린다면 몽순이가 알까? 알아도 상관없다. 나는 캐나다에 있으니 몽순이가 찾아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윤영선 님/Delton B.C Canada
Board 삶 속 글 2006.12.09 風磬 R 4692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영원한 비밀 초등학교 6학년, 어느 겨울의 일이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으로 나와서 몇몇의 친구들과 양지 쪽에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화장실은 너무 멀고 날씨도 추워 움직이기 싫었던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탱자나무 울타리에 실례를 했다. 누가 볼세라 얼른 일을 마치고 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잠시 후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체육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헐레벌떡 우리를 향해 뛰어오셨다. 선생님은 내옆에 서 있던 친구의 멱살을 움켜잡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아, 어디다가 오줌을 싸느냐! 거기가화장실이더냐." 친구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내 눈치픞 살피면서 말했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구냐. 이 두 눈으로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다니." 그 순간 선생님의 손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화가 난 선생님이 기어이 친구의 뺨을 때리고 만 것이었다. 친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 제가 그랬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친구의 양볼에는 벌겋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그때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 친구의 볼만큼이나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사쥐고 교실로 뛰어들어가면서 나는 뒤따라오는 친구를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이 사건을 이십 년 이상 가슴속에 묻어 두었다. 그 친구와는 계속 만나 왔으나 한번도 그 일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너무나 불편하고 미안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음을 다져먹고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데 친구는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다며 손을 저었다. 그날 밤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불현 듯 이십여 년 전 선생님에게 멱살을 잡힌 그 친구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순간 친구는 그 때의 일을 누구보다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성수 님/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Board 삶 속 글 2006.12.08 風磬 R 4537
-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보이지 않는 충고 중학교 때의 일이다. 새학기 초라서 친구들과도 서먹서먹한 때였는데, 하루는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가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는 말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아는 척하기가 쑥스러웠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냥 못 본척 물건을 고르다가 그만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안 보는 틈을 타서 몰래 과자를 주머니에 넣고는 유유히 나가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몹시 당황해서 그 애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후에도 두세번 나는 우연히 그 애의 그런 행동을 목격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점점 학교에서 그애와 마주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그 애도 이런 내 태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그 애를 교실 밖으로 살짝 불러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이젠 그런 짓 하지마!" 처음엔 그 애는 움찔 놀라는 듯하더니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 보다가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다. 그 날 이후, 그 애는 내가 쳐다볼 때마다 일부러 나를 피하듯 고개를 돌리곤 했다. 나는 그 친구와의 어색한 관계로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않았다.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나고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식구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으며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만치서 그 애가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수줍게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현정아 고마워. 그때 나에게 충고래 주고 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는 훌쩍 뛰어가 버렸다. 순간 내 가슴속으로 그 애가 주고 간 꽃다발의 상큼한 향내가 깊이 밀려 들었다. 강현정 님/경남 진주시 수송동
Board 삶 속 글 2006.12.07 風磬 R 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