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지나가고 마지막 계절이 닥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열매는 익고 나뭇잎은 떨어질 것이며 감추어졌던 것은 나타날 것입니다. . . . 장마철을 지나며 잠시 멈짓햇던 오리섬 강변에 준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불과 열흘 남짓한 공사 기간동안 강은 온통 뒤집혔고 사방은 요란한 굉음 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날마다 강가에 나가 강을 향하는 기도를 멈출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5차례에 걸쳐 한겨례에 오리섬 공사 현장을 실은 4대강 반대 광고가 나갑니다. 그동안 오마이 블러그를 통해 모인 독자 후원금과 기사고료, 그리고 신문사의 배려입니다. 제가 특히 이곳 상주에 안착하고 광고운동까지 하는 이유는 이곳이 낙동강 최고의 비경이라고 부르는 경천대 부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기실은 지금 많은 사람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막연하게 밖에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짐짓 신문의 지면이나 전파매체를 통해 보는 현장은 어쩌면 정부가 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속 80km의 속도로 현장을 지나갈 때도 우리는 2차원 이상의 풍경을 볼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 있으면 모래 한 알, 돌맹이 하나도 나와 1 : 1 대응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위 사진은 한겨례에 올린 광고사진이며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으로 옮겨갑니다. 이시점에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은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날마다 오리섬 공사 현장부근에 나아가 트위터를 통하여 나날의 일지를 올리고 (chorokorg) 나름 블러그와 홈피를 통해서도 소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위분들은 그런 저를 보고 "참 독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걸 어떻게 매일 보고 있냐고 .... 때로 무기력한 깊은 슬픔이 꿈속에서까지 찾아옵니다.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면 저는 佛家의 게송 한 구절로 마음을 다스립니다. 唯願諸佛 作證明 寧捨身命 終不退 원컨대 모든 부처님이시여 증명하소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끝내 물러서지 않겠나이다. http://twitter.com : 초록의 공명
Board 추천글 2010.09.06 바람의종 R 32745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37080.html 나라를 더럽히고 고통을 준 원흉이 나였단 말인가 고전 오디세이 ⑬ “너 자신을 알라”를 향한 소포클레스의 도발 ‘오이디푸스 왕’ 고명섭 기자 » 고전 오디세이 인간은 끝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예수는 답을 안 뒤 십자가에 못박히기로 결단하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들었다. 우리는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가 존재의미를 안 뒤 추락하는 것은 아닌가?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사람의 아들인 나를 사람들은 누구라고 합니까?” 제자들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를 인간과 신 사이에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고. 그러나 베드로는 대답했다. “당신은 메시아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그가 신의 아들이라면, 그래서 모든 것을 아는 신 자체라면 그런 질문이 그에게 굳이 필요했을까? 만약 예수가 자신의 정체성이 정말로 궁금해서 그렇게 물었다면, 참으로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신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인간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고 확인하며, 회의하고 좌절하며, 또 희망을 찾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특징이다. 예수가 단순히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 질문은 그가 인간조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미를 진지하게 묻고 있었음을 환히 보여준다. 또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겪으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철저하게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따라서 인간조건은 신의 아들인 예수에게 곁들어진 가벼운 액세서리가 아니라, 절박한 실존의 묵직한 조건이었다. 그 조건 속에서 자신이 비록 인간이지만, 동시에 인간들을 위해 처절하게 찢겨져야만 하는 신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깨달았을 때, 곧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았을 때,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고 신의 아들로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이해되는 예수의 질문과 결단은 옛 그리스의 지혜와도 잘 통한다.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의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이 말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준다. 자기 주제와 분수를 알지 못하고 날뛰는 사람이 세상에 끼치는 폐해를 생각해보면, 이 말에 담긴 지혜의 깊이와 가치를 잘 헤아릴 수 있다. 문제는 이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에서 생긴다. 그래서 이 지혜는 존경의 대상이 되면서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의 삶이 이 치명적인 역설을 잘 보여준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뭔가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지혜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샀고, 독배를 마셔야만 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지혜의 시금석을 지당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던져 볼 만한 질문이 있다.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를 꼭 알아야만 하는가? 진정 그 앎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소포클레스의 비극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그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부은(oidi-) 발(pous)을 가진 사나이 ‘오이디푸스’다. » 프랑스 화가 장 오귀스트 앵그르의 1808년 작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왕>에서 그는 테바이의 왕이다. 그런데 그가 젊었을 때에는 테바이가 아닌 코린토스의 왕자였다. 그런데 왜 코린토스의 왕자였던 그가 테바이에서 왕 노릇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 오이디푸스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기막힌 삶에 잇닿게 된다. 코린토스의 왕자였던 오이디푸스는 어느 날, 술에 취한 한 사람으로부터 그가 코린토스 왕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부모님을 찾아가 확인을 요구했다. 왕과 왕비는 그것은 헛소리니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이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고, 또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도성으로 퍼져나갔다. 마침내 그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을 찾아 갔다. 그는 물었다. “전 도대체 누구입니까? 제 친부모는 누구입니까?” 신탁의 대답은 뜬금없이 끔찍했다. “너는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 너의 어머니와 몸을 섞을 것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인 오이디푸스는 신탁의 운명을 피해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침내 그가 향한 곳이 하필 테바이였다. 그곳에서 그는 테바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던 스핑크스를 예지를 발휘하여 물리쳤고, 테바이 사람들의 구원자로 떠올랐다. 때마침 국왕이던 라이오스가 테바이 외곽 지역에서 도적들에게 살해를 당한 뒤라, 왕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라이오스의 미망인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아내가 되었다. 그들 사이에서 네 자녀가 태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테바이에 역병이 돌면서 사람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은 오이디푸스에게 몰려와 스핑크스를 물리쳤던 것처럼 다시 한 번 테바이를 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델포이 신전으로부터 오이디푸스에게 전해진 구원의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가 들어와 테바이를 더럽혔다. 따라서 그 살인자를 찾아내 처형을 하든가 도성에서 쫓아내야 테바이는 깨끗하게 정화되고 역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이디푸스는 사명감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나는 이 살인자가 누구이든, 내가 권력과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이 땅에서 쫓아낼 것입니다. … 나는 이것을 위해, 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것처럼 싸워나가겠습니다. 살인자를 찾아 모든 곳을 수색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이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그가 도시를 구하기 위해 살인범을 찾아가는 데에 몰입할수록, 그가 누구인지가 점점 드러났다. 사실 그는 테바이로 들어오기 전에, 한 노인과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그 노인을 죽인 일이 있었다. 그 노인이 바로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였고, 라이오스를 죽이고 도시를 더럽힌 자가 바로 오이디푸스, 그 자신이었다. 그는 한때 테바이의 구원자였고, 현재 테바이의 왕이지만, 알고 보니 테바이를 더럽히고 역병을 몰고 온, 고통의 원흉이었던 것이다. 그가 장담한 대로 도시를 정화하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처형하거나 추방해야만 했다. 더 끔찍한 일은 그가 죽인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버지였으며, 따라서 지금 그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왕비 이오카스테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신탁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참혹한 사실을 감지한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를 말렸다. “신들께 맹세코, 그대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제발 그것을 추적하지 마세요. 난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아, 불행한 이여, 그대가 누구인지 결코 알지 못하기를!” 이오카스테는 오싹했다. 그녀가 수십 년 전 오이디푸스를 임신했을 때, 그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부는 태어난 아이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뒤꿈치를 쇠로 뚫고 끈으로 묶어 나무에 매달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죽음의 순간에서 구해졌고, 코린토스의 왕실에 건네졌다. 그의 발이 부은 이유, 그가 그래서 ‘오이디푸스’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오카스테는 험악한 운명을 피하려고 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나, 그 저주스런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치욕과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이디푸스 역시 참혹한 운명을 피하려고 코린토스의 부모를 떠났지만, 결국 제 발로 친아버지를 찾아가 죽이고, 친어머니를 범한 꼴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파냈다. 두 사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끔찍한 운명을 피하려던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는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 순간, 파멸의 나락으로 한없이 곤두박질쳤다. “너 자신을 알라”는 지혜는 그들 모자에겐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 희망하며 살아간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고 진지하게 노력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은 우리의 건전한 상식을 도발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진리와 우리의 존재의미를 알게 될 때, 혹시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허무와 파멸의 끝없는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것은 아니냐고.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Board 추천글 2010.08.27 바람의종 R 26644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281 ‘사람의 눈’이 필요한 때입니다 [작가회의 기고]2010년 8월 대한민국 2010년 08월 18일 (수) 14:55:23 오도엽 시인 ( media@mediatoday.co.kr) 계영대 씨 아파트 베란다는 망루입니다. 대형 망원경이 언제 침탈할지 모르는 적을 향하여 스물네 시간 번뜩이는 눈으로 감시합니다. 거실은 야전부대 상황실입니다. 노트북 세 대가 시시각각 변하는 적의 동정을 파악하여 기록합니다. 적에게 고립된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지원을 요청합니다. 안방은 물품 보급창고입니다. 생수와 라면, 그리고 담배가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계영대 씨는 비밀 루트를 통하여 끊임없이 물품을 조달받습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노트북만 다섯 대입니다. 계영대 씨는 쌍용자동차 ‘강제’ 희망(?) 퇴직자입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직원들은 공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수십 년간 일해 온 공장에 77일간을 스스로 몸을 옥죄고 있었습니다. 물이 끊기고, 전기가 끊겼습니다. 산짐승이 되어 공장을 지키던 계영대 씨는 68일째 되는 날, 백기를 들고 공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친형 계영휘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형, 미안해. 먼저 나갈게.’ 자진해서 옥쇄를 풀고나오면 선처를 베풀겠다는 선무방송을 듣고, 계영대 씨는 동료와 친형을 남겨두고 공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곧바로 손목에 수갑이 채어지고 온몸이 오랏줄로 묶였습니다. 아파트를 망루로 만든 쌍용차 강제 '희망' 퇴직자 계영대 씨가 ‘선처’를 받아 간 곳은 유치장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내가 공장을 그만두기를 희망해서 스스로 사직을 한다’는 ‘퇴직서’를 쓰라는 것입니다. 공장을 다니겠다는, 그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 식구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계영대의 진심은 갈기갈기 찢기고 정말 희망하지 않는 ‘희망퇴직서’를 써야 했습니다. 계영대 씨가 오랏줄과 수갑에서 풀려나서 유치장 너머에서 기다리는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 지난 2009년 8월 5일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을 점거중인 노조원들이 인근 건물을 모두 장악한 경찰과 사측 직원들의 공격을 피하며 바리케이트 저지선을 만들고 있다. ⓒ노컷뉴스 그날 이후로 계영대 씨는 자신의 아파트가 공장이 되었습니다. 지키지 못한 공장을 자신의 집에 세우고 다시는 나의 진심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망루를 세우고 상황실을 꾸리고 보급품을 준비했습니다. 계영대 씨의 눈은 망원경 너머 세상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 년이 흘렀습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가해진 야만의 77일이 끝난 지. 계영대 씨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전투 상황실에서 계영대 씨와 살 수 없었던 아내와 자식은 그 전에 전쟁터를 탈출했습니다. 68일째 공장을 나왔던 계영대 씨. 이번에는 홀로 남더라도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건만 포로가 되어 병원에 갇혔습니다. 해고가 옳은지 그른지, 노동자들의 공장 지키기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를 말하려고, 기억하기조차 끔직한 일 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닙니다. 평택을 고용촉진지구로 지정해 일자리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건설현장 날일 아니면 대리운전이라는 말도 꺼내기 싫습니다. 공장에 있던 노동자들이 짐승보다 못한 야만에 시달려 거의 절반 남짓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공장에 있던 600명 가운데 부상자가 290명이었다는 이야기도 이제 그만 하고 싶습니다. 이미 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목숨을 버려야 할지 알 수 없다고 호소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대한민국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그냥 묻고 싶습니다. 뜨거운 심장에 묻는 게 아닙니다. 냉철한 이성에 묻는 것도 아닙니다. 2010년 대한민국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을 국가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아니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대한민국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사람의 눈이 필요할 때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와 지식과 경험이 쌓여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뭔가 앞서가는 사고, 새로운 철학, 뛰어난 이론, 훌륭한 정책을 내놓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을 찾는 것입니다. 경쟁의 눈, 생존의 눈, 물질의 눈, 야수의 눈, 파괴의 눈, 강자의 눈이 아닌 사람의 눈. 냉혈이 아닌 따뜻한 붉은 피가 돌고,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기쁘면 함께 웃고, 어려움은 나누고, 더디더라도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사람, 그 본연의 눈. 한여름입니다. 이 무더위 언제 지나가나 한숨이 푹푹 나오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추위 언제 지나가나, 봄은 언제 오나, 호들갑떨며 두툼한 외투 깃 올릴 날, 그리 멀지 않았으니. 조용히 귀 기울여 보세요. 스무날 살고 지는 매미 울음 사이로 귀뚜리 울음 들릴 겁니다. 가만히 눈여겨보세요. 창창하게 푸르던 나뭇잎에 가을이 살포시 물들었습니다. 귀 기울이고 눈여겨 이웃을 바라보세요. 아, 그곳에 계영대 씨가 있다고요? 곳곳에 망루가 늘어가고, 망원경이 세상을 향하여 사람을 찾고 있다고요? 일 년 전 쌍용자동차를 떠올리며, 굳이 절망을 되뇌고 싶지 않습니다. 위정자를 꼬집고 싶지도, 사람이 없는 공장에 삿대질하기도 싫습니다. 내 얼굴에 사람의 눈과 귀가 아직 달려 있는지 손으로 매만질 뿐입니다.
Board 추천글 2010.08.25 바람의종 R 2845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019 이 정권엔 목숨 걸고 MB 말릴 사람 없나 [작가회의 릴레이 기고] 광해군에겐 있고 MB에겐 없는 것 이은규(시인) 옛날이야기이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한 수많은 인재들 가운데 최종 33명이 뽑힌다. 이들은 더 이상 탈락하지 않는다. 다만 등수가 결정될 뿐인데, 왕 앞에서 치르는 전시에서 등수가 가려지는 최종시험이 바로 책문이다. 왕은 절박하게 인재를 원했고, 관건은 시대의 문제를 함께 헤쳐 나갈 사람이어야 했다. 그래서 당대의 가장 절박한 물음에 목숨을 걸고 진솔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구했다. 그런 점에서 대책을 진술하는 선비는 스스로를 재상이라고 가정하고, 자기가 만약 재상이라면 왕을 보필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지를 토로했던 것이다. 광해군 3년, 과거의 마지막 관문 책문서 "나라의 시급한 과제가 무엇이냐" 목숨걸고 직언한 임숙영 "임금의 잘못이 국가의 병" ▲ 4대강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는 환경운동가 3명이 지난 22일 경기도 여주 이포보 공사현장 점거농성에 들어가며 설치한 대형현수막은 그날 오후 현장시공업체(대림산업) 관계자들이 글자가 보이지 않도록 아래부분을 말아버렸다. 3일 후인 지난 25일 오후 농성자 중 한 명인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이 암벽등반장비를 이용해 보 상판 고공농성장에서 수문 위로 내려와 현수막을 펼친 후 다시 올라가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했다. 27일 현재 이포보와 경남 함안보에서 4대강반대를 위한 환경운동가들의 점거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예컨대 1611년, 광해군 3년에 실시된 별시문과 책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나라를 다스리는 요령은 당시의 시급한 일을 잘 파악하는 데 있을 뿐이다. 깊은 못과 살얼음을 건너야 하는데 건너갈 방법을 모르듯,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요령 있게 공적을 이룰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필시 일찍부터 마음속에 북받쳐 오르는 뜻을 품고 있었을 테니, 저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해보라. 내가 직접 살펴보겠다.> 이에 임숙영(1576~1623)이 올린 대책의 요점은 이렇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책문에서 스스로의 실책과 국가의 허물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에 대해서는 문제를 내지 않으셨으니, 저는 전하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중요한 문제를 애오라지 덮어두기만 하고 의논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저는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십시오.> 위험한 발언과 마주한 광해군. 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인 심희수가 임숙영의 대책을 장원으로 급제시키려했으나, 다른 시관들이 반대해 병과 합격에 그치고 만다. 광해군은 임숙영의 대책을 읽고 자신의 실정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데 진노하여, 그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하는데 이른바, 삭과(削科) 파동이 그것이다. 분노한 광해군, 직언 선비 이름 삭제 지시…재상들 반대 '삭과 파동' 끝나지 않은 옛날 이야기…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삼사(三司)에서 간쟁을 하고 재야에서도 임숙영의 정정당당한 주장을 지지하여, 삭과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논계(論啓)가 수개월 이어졌다. 이덕형, 이항복 등이 대책을 간절히 변론하자, 광해군은 마지못해 주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차후에는 질문의 요지를 벗어난 대책은 과거에서 선발하지 말 것을 엄명했다. 결국 심희수는 벼슬을 내놓았고, 권필은 삭과 파동이 빌미가 되어 죽임을 당했다. 파란이 일단락된 후 임숙영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문장에 뛰어났고, 경전과 역사에 밝았던 그는 광해군의 거듭되는 실정을 비판하다가 파직 당하기에 이른다. 1623년 복직되었지만, 그 해 가을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게 된다. 옛날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은 어떤 화법을 지니고 있는데, 이렇듯 근원적인 공감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떻게 예언적인 음성이 아닐 수 있겠는가” -바슐라르
Board 추천글 2010.08.11 바람의종 R 25465
. 지난 6.2 선거 때 민주당은 4대강 사업을 제1의 공약으로 걸었고 국민은 민주당이 그 약속을 지켜주기를 바라고 투표장에 갔다. 그러나 투표장에 가는 길은 그리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성당에서는 4대강을 흐르게 하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4대강을 반대하는 후보를 찍겠다고 공포했으며, 불교계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교인들이 거리에 서서 서로 서로 손을 잡아주며 물 흐르 듯 그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밀어주고 받들어 준 길이었다. . 그 가운데는 불속에 몸을 나투신 문수 스님이 계셨고 6.2 선거가 끝난 직후 지팡이를 의지하여 길을 떠나신 수경스님이 계셨다. 그러나 민주당은 문수스님의 뜻도 수경스님 가신 자리로 돌볼 여유가 없는 듯하다. 불과 두 달 뒤에 치러진 7.28선거는 패배했고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조차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결과로 운하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이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섰다. 지금 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찢어질 듯한데, 민주당은 안이하게 비대위 체재로 당권 경쟁이란다. 그 와중에 국토부는 경남도와 충남도가 국토부로부터 위임받은 4대강 공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경우, 계약조건 불이행에 따른 민사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협박질 인데,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 지난주 낙동강 낙강 켐프에 왔던 젊은 친구가 묻는다. "스님, 강에 있을 때와 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중 어떤 때가 더 맘이 편하세요?" "강에서 멀어지면 우는 아이 거리에 세워 둔 것 같이 불안해서 .... " 귀농 3년차인 젊은 친구는고개를 떨구고 이야기한다. "저는 안보고 싶고 강 가까이에 오는게 싫고 보는게 싫어요" 오는게 싫고 보는게 싫다면서도 행사 때 마다 와서 굳은 일은 도맡아 해준다. . 마른장마 뒤에 낙동강은 피멍들듯 흐려져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슬픈 강을 버릴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 생에 다시 밟아보지 못할지도 모를 저 평화로운 강마을이, 고운 모래톱과 그 안에 깃들어 살던 생명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 . 송살리떼 헤엄치는 것이 보이시나요? 우리의 강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강에서 멀어져 갔고 우리에게서 잊혀져 있었을 뿐입니다. . . 매주 토요일 상주 상도 촬영장에서 낙강켐프 - 비박켐프 칩니다. 무너지는 강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답이 없다는 것보다 질문을 갖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상주보를 다녀 온 학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스님, 현장에 갔다왔는데 저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그 물음이 오히려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강켐프는 강물소리 들으며 밤세워 두런두런 , 답이 없는 세상에서 질문을 가져 보는 시간입니다. 문의 신청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http://cafe.daum.net/chorok9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http://cafe.daum.net/sangjurnw 박종관 : 011-9322-0445 . . . . . . . 간혹, 초록의 공명으로 보내는 글이나 사진 사용에 대해서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쓰실 때 출처만 밝혀주셔요. 한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출처를 밝히실 '초록의 공명'이라고만 해주세요. .......우연히 제 앵글에 잡힌 분들의 사진은 어떻해야 할까요? ▶ 물길을 걷다.http://blog.ohmynews.com/chorokgm
Board 추천글 2010.08.04 바람의종 R 28618
. 지난 5월 병산의 새벽강에서 모래사장을 달리는 수달과 만났습니다. 수달은 늘 그래왔듯이 힘차게 달려 물속으로 풍덩 뛰어 들었습니다. 사진의 화면을 클릭하면 강변을 달리는 수달의 동영상으로 옮겨갑니다. . . 지금 수달이 뛰어가던 병산의 맑은 모래사장에는 붉고 노란 깃대가 꽂혀있고 부용대 앞 하외마을의 나루가 사라진 것처럼 병산의 강변에는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만일 이 사업이 계속진행 된다면 앞으로 저 깃대가 꽂혀있는 백사장을 강이라 불러야 할 것이며 저는 이 강가에서 수달은 본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 .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가는듯하고 강을 바라보는 시선에 슬픔이 베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강에 깃든 생령들과 미래에 이 강가에 올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상황을 슬픔의 외피로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 자연에 가하는 폭력들은 조만간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아 올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첫번재 일은 ..... 진행 방향에서 잠시 멈추어서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발자국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 . . 병산 서원으로 향하는 이 아름다운 이 풍경들을 한장의 사진으로 남겨 두기에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슬픔과 잃어서는 안될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너무 클것 같습니다. 이제 깊고 아름다운 이 습지들을 풍산 들판에 "농지 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퍼올린다고 합니다. . . . 하지만 슬픔이나 상실감 따위의 감정 보다 더 두려운 것은 ....누천년 동안 강이 만들어 놓은 비옥한 땅을 덮어가는 야만적 행위 뒤에 우리의 욕망 곡선을 따라 밀려 들어 올 것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 . . 위풍경의 마지막 사진은 운하 공약을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된 직후 2008년 1월 병산서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강이 어떻게 흐르며 강과 습지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생활과 문화가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즈음에서 저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분들께 한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래는 지난 6월 밀양 시민들이 자발적인 성금으로 경향신문에 올린 광고입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상주의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서도 같은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을 확산하고 싶어 했지만 주위의 지인들은 종교인인 제가 돈과 관련 되는 일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염려하셔 선뜻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체를 가지고 계신 분들께서는 참여하여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동참하여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현제 저는 .... 오마이뉴스 블러그에 4대강 관련 글을 올리고 있고 그에 대한 대한 원고료 주기에 일정 금액이 입금되고 있습니다. 지면을 할애 할 만큼의 금액이 모이는 대로 - 이 운동이 끝나는 날까지 전액에 대하여 (현제 21만원 입금 상태...) 위의 사진, 혹은 같은 테마의 광고를 올려보고자 합니다. 병산 서원과 낙동강의 습지를 사랑하는 분들께서는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 . . . ▶ 물길을 걷다.http://blog.ohmynews.com/chorokgm
Board 추천글 2010.07.31 바람의종 R 27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