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주박 안에서 넘치는 바다 - 함성호
어디 갔다 이제야 왔니? 남바리 갔었어요 엄마 가서 고기도 잡아올리고 벗의 죽음에 가서 꽃도 뿌리고 왔지요 그 바다의 고기들은 내내 싱싱하고 더 살쪄서 절로 배가 불렀어요 모든 것이 일순간에 너무 풍요로워지고 바다는 정말 번성했어요 어디갔다 이제야 왔니? 이른 강에 갔었어요 엄마 강은 엄마의 젖무덤처럼 황폐해가지고 메마른 바닥에서 나는 놀았지요 사람들은 곱게 서로서로의 머리를 매어주고 얼굴엔 아름다운 화장도 해주었지요 나도 얼굴을 씻고 고운 진흙으로 단장하려 했는데요 엄마, 자그마한 웅덩이에 고인 물을 내 손주박으로 떠올렸을 때 거기에는요, 파도치며 흐르는 바다가 떡 하니 있었어요 나는 그 바다에서 그만 목을 놓고 말았지요 어디 갔다 이제야 왔니? 이제 방금 무덤에서 돌아온 걸요. 엄마 이슬의 머리를 밟고 갔다 왔어요 많은 꽃들이 피어 무덤가는 길을 환히 밝혀 주었지요 하늘이 너무 짱짱해 눈이 가려워 그 하늘 다 보지 못했지요 눈감고 한참을 가다 나는 이윽고 낯선 마을에 닿았어요 거기서 발을 씻고 한 삼 년 잘 살았지요 그곳엔 청승맞은 꽃들이 주야장천 만발해 사람들은 늘 슬픈 얼굴이었어요 어디 갔다 이제야 왔니? 초록빛 새들의 노래를 쫓아 빈 들에 갔었어요 엄마 그곳엔 흰눈이 내려 떡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눈이 모자라기 온들이 널비널비 광활해 갔어요 그 눈 내린 벌판에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지요 여자는 자꾸 울기만 했는데요 난 그 계집의 슬픔보다 그 계집의 눈물이 짜서 더 좋았어요 그게 탈이 되어 내가 쫓아간 초록빛 새처럼 내 사랑도 그렇게 떠나고 말았지요 어디 갔다 이제야 왔니? 아무 데도 가지 않았어요 엄마 단지 차디찬 건넌방에서 죽음처럼 누워 있었지요 거기에서 세상 밖의 온갖 소리들을 들었어요 방안엔 물이 가득차 나는 물고기처럼 말이 없었지요 엄마, 김칫국에 밥말아 한상 잘 차려 주세요 하나 하나 먼 산 능선의 나뭇잎들을 다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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