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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다섯에 쓴 시 - 봉우 권태훈
넓디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는
문도 없고 담장도 없으니
오고감에 형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중에
옛부터 성인, 진인, 신인, 철인들이 횡설수설하며 경전을 지었구나
넓은 바닷물 위에 좁쌀알같은 인생 백년을
하늘과 땅에 부끄럼없이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우니
세월은 번개처럼 순식간이나
삶의 자취는 길이 남아 있구나
일생을 크게 평하면 공을 쌓음과 죄를 지음일진대
그것은 오로지 선과 악의 두 글자로 나뉘어진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태어난 자에게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한 가지 이치가 있으니
마음을 집중하여 바르고 크게 나아가면 늘 만족을 얻을 것이요
사사로운 욕심으로 잘못을 들어가면 늘 만족을 얻지 못하리라
있음과 없음의 우주 역사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생의 문장을 수놓는다
가소롭구나, 풀잎에 달린 이슬같은 인생이여
어느덧 예순 다섯의 나이를 맞이하니
앞으로 길면 삼십 년, 짧으면 이십 년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결국 눈빛이 땅에 떨어짐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걷히니
본래면목이 드러나는데
애써 무엇을 이루려 함이 무슨 이로움이 있으랴
여기 맑은 향 한 대 사루고 차 한 잔을 마신 후
고요히 앉아 밝은 가운데 바라보니
푸른 산 흰 구름은 절로 한가롭고
밤낮을 흐르는 물만 공연히 분주하구나
이제 늙은이가 되어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풀고 앉았으니
하늘과 땅이 태평하여 큰 바다와 같도다.
단기 4298년(서기 196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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