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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거리에서 - 구상
붉은 벽돌 빌딩에 낡은 현수막이
실의 같이 드리운 겨울 일모,
앉은뱅이 철책 앞 포도 위에
시멘트 지대 조각을 모래톱 삼아
남생이 새끼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목의 가로수처럼 앙상한 사내가
뽀얗게 먼지를 쓰고 서서
거미손으로 실을 잡아당길 양이면
남생이는 쪼르륵 쪼르륵 달려나가고
쪼르륵 쪼르륵 달려나간단
종이 사장에서 떨어지고
드르륵 드륵 드르륵
은행의 철문이 내려지면
눈앞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눈도 돌리지 않는 사람의 파도가 밀려
선창같은 혼잡 속에서
버스는 다가오고 떠나가고
딛고 선 아스팔트 밑에
연탄빛 여윈 청계천이 지나가듯
사내의 주린 창자 속에서도
쪼르륵 쪼르륵 남생이가 달려나가고
달려나가단 떨어지고
외론 섬 등대마냥 켜보는 칸델라 불에
종이 조각 보는 어안렌즈 속의 해저,
아니면 갈가마귀새끼 떼들이
내려앉은 무덤,
이 처량한 성경에선
죽은 전우의 송장이라도 다가와
손을 잡으면 반가와 눈물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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