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드레스 - 김금용
눈가에 빗줄기가 그려져 있었어
몹시 추웠어
푸르고 푸른 바다 거품이 온 몸에 묻어 있었거든
물론 시끄러운 록 뮤직이 천장을 두들겼지
찢겨지고 반쯤 벗겨진 의상들이
회색 터널 속을 도발적으로 걸어가고 있었어
두려움과 슬픔이 검게
입술 밑으로도
이마 위로도 흐르고 있었지만
빨간 머리 풀어헤친 인형이
질질 끌려 나와 대신 웃으며 지나갔지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우리는 기대하는 것일까
얼만큼이나 더 올라가야 바다를 볼 수 있을까
한 층만 더 오르라고,
남보다 한 층만 더 위로 올라가라고
이제 더 나갈 길 끊긴
지하철 금지구역 깜깜한 철로 너머
비상구를 뜯기 시작했어
얼굴엔 직접 슬프고도 두려운 미래를 그려놓고
남과 여의 혼돈된 성을 꿈꾸며
현실과 과거의 혼미한 꿈 밖을 서성이며
때론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욕망의
긴 가죽끈을 목에 걸고
끌려갈 때를 붙잡힐 때를 목말라 하며
제자리에 서있는 의자, 책장을 두들기다가
뒤뚱거리는 하루치 안녕하심을 코웃음치다가
온 몸에 코피를 쏟아내는 거야
콧수염을 기르면 어때
수술자국이 보이면 어때
그 흔적마저 없으면 어떻게 너를 기억하겠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건 행복과 기원이지만
도발적인 현실 앞에서
분노와 충동은 앰뷸런스 사이렌처럼 울어대는 걸
선홍색 피가 흘러
바짝 등줄기로 진땀이 흘러
그만 등을 켜 봐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와 그 소음의
소용돌이에서 길을 열어 줘
눈부신 사이렌 소리에 불안은
검붉은 박쥐 울음소리를 내고
단장한 분홍 드레스는
검은 가죽 벨트에 무겁게 구겨졌어
무장한 시간들을 벗어내자고,
허옇게 뜬 시멘트 바닥 위로 던져버리자고,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
공지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53,535 | 2023.12.30 |
393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1~4) - 이해인 | 風文 | 281 | 2024.11.08 |
3929 | 사랑도 나무처럼 - 이해인 | 風文 | 227 | 2024.11.08 |
3928 |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 김수영 | 風文 | 721 | 2024.11.08 |
3927 | 양지쪽 - 윤동주 | 風文 | 246 | 2024.11.08 |
3926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6~9) - 이해인 | 風文 | 258 | 2024.11.06 |
3925 |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 風文 | 321 | 2024.11.06 |
3924 |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 風文 | 243 | 2024.11.06 |
3923 | 산상 - 윤동주 | 風文 | 226 | 2024.11.06 |
3922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1~5) - 이해인 | 風文 | 134 | 2024.11.04 |
3921 | 사랑 - 이해인 | 風文 | 223 | 2024.11.04 |
3920 | 파리와 더불어 - 김수영 | 風文 | 172 | 2024.11.04 |
3919 | 닭 - 윤동주 | 風文 | 179 | 2024.11.04 |
3918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8~21) - 이해인 | 風文 | 696 | 2024.11.01 |
3917 | 비 갠 아침 - 이해인 | 風文 | 643 | 2024.11.01 |
3916 | 미스터 리에게 - 김수영 | 風文 | 161 | 2024.11.01 |
3915 | 가슴 2 - 윤동주 | 風文 | 185 | 2024.11.01 |
3914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3~17) - 이해인 | 風文 | 715 | 2024.10.28 |
3913 | 비밀 - 이해인 | 風文 | 221 | 2024.10.28 |
3912 | 凍夜(동야) - 김수영 | 風文 | 245 | 2024.10.28 |
3911 | 가슴 1 - 윤동주 | 風文 | 177 | 2024.10.28 |
3910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7~12) - 이해인 | 風文 | 210 | 2024.10.25 |
3909 | 부르심 - 이해인 | 風文 | 207 | 2024.10.25 |
3908 | 싸리꽃 핀 벌판 - 김수영 | 風文 | 206 | 2024.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