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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1957~ ),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내가 미끄러질 때 너는 물속에서 꿈을 꾼다. 세계의 수면 위로 섬광처럼 핀다.
미끄러진 내 몸속에서 신경계를 자극하는 뿌리처럼. 우리의 모든 것 끝난 뒤
에도 너는 핀다. 수없이 미끄러지는 내 간절함으로.
박상순<시인>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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