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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1953~), '빙어'
그 어느 날 강가에서
속없는 은빛 날고기를 먹었었지.
속이 한한 널 처음 보며 얼마나 눈부셔했던가.
나무젓가락으로 펄펄 살아 뛰는 너를 집어
초고추장에 휘휘 저어 먹으며 얼마나 찜찜해 했던가.
먹고 먹히는 것이 산 것들의 숙명이라지만
감출 죄의식조차 없이 투명한 생(生)을
너무 사납게 씹고 또 씹었던 것은 아닌가.
먹을 것이 왜 하필 여리고 속없는 것이어야 했던가.
속없으니 뒤탈 없을 거란 생각을 했던가
아작아작 투명한 것을 씹어
불투명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던가.
물의 길을 따라가다 재수 없게 걸려온 생이
미로의 창자 속으로 들어가 무엇이 되었던가.
비계와 똥이 되었던가.
미로 속 미궁을 깨부수는
통쾌한 유머 같은 것이 되었던가.
속 다르고 겉 다르지 않은 투명인간이 되었던가.
혹 배탈 같은 뒤탈은 없었던가.
가을 하늘처럼
속없이 눈부셨던 널 떠올리면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자꾸 물어서 뭘 또 건지려 하겠는가
목사님은 천상 목사님이고, 스님을 뵈오면 스님. 아이는 아이.
뛰는 자, 나는 자도 다 그이들의 모습인데.
아침에는 개미, 점심엔 하마, 저녁엔 검푸른 강물인 나는 세상 탓을 할까요.
시인이신 고진하 목사님께 불평이나 할까요.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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