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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례(1955~), '화투(花鬪)'
슬레이트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뚝 또 뚝 떨어지구요
창에 기울은 오동꽃이 덩달아 지네요
종일 추녀물에 마당이 파이는 소리
나는 차배달 왔다가 아저씨와
화투를 치는데요
아저씨 화투는 건성이고
내 짧은 치마만 쳐다보네요
청단이고 홍단이고
다 내주지만
나는 시큰둥 풍약이나 하구요
창 밖을 힐끗 보면
오동꽃이 또 하나 떨어지네요
집 생각이 나구요
육목단을 가져오다
먼 날의 왕비
비단과 금침과 황금 지붕을
생각하는데
비는 종일
슬레이트 지붕에 시끄럽구요
팔광을 기다리는데
흑싸리가 기울어 울고 있구요
아저씨도 나처럼 한숨을 쉬네요
이매조가 님이란 건 믿을 수가 없구요
아저씨는 늙은 건달이구요
나는 발랑 까진 아가씨구요
한심한 빗소리는 종일 그치지를 않구요
왠 청승에 불건전. 그렇게 보셨어요? 리듬이 있고 그림이 펼쳐지고.
기막힌 감정이입. 꽃들의 투쟁 속에 계절은 가고 비는 내리고.
세상을 끌어안는 신생의 순간인데 어머나! 뽕짝 같은 이 몸은 어쩌지요.
회한과 욕망의 빗방울이 떨어지네요.
박상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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