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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자(1958~ ), '공원의 낙타' 전문
공터 벤치에 병든 낙타가 누워 있다
드넓은 사막을 잃어버린 육봉은 알코올에 절어,
햇볕에 퉁퉁 불어 있다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어린 낙타의 성화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 겨울 언 땅을 딛고
간신히 일어선다
굽어진 길, 물주머니 하나로 이어온 가계는
이제 약한 바람에도 고꾸라진다
알코올에 포박되어 길 밖으로 끌려갈 때마다
칭얼거리는 피붙이는 남자의 마지막 채찍이다
소아암에 걸린 딸아이,
몸에 반점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도 모르고
나무등걸같이 말라붙어 있는 아비의 눈을 띄운다
텅 빈 정신의 한 가운데서
한 점 낙엽으로 굴러다니는 사내
한때는 커다란 혹이었다가 이젠 다 말라들어
퍼석해진 등을 일으켜
무료급식소를 향해 한 발 한 발 걸음마를 한다
딸아이 하나를 목발 삼아 짚고서
'낙타'는 소아암을 앓는 아이의 아버지이며 실업자이고 노숙자다.
그는 술의 힘에 의지해 삶을 이어간다. 그도 한 때는 사막 같은
일터에서 갈증을 견디는 강인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일터가
없는 겨울과 도시와 공원에서 그 힘은 아무 쓸모가 없다. 이제
채찍처럼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피붙이의 칭얼거림뿐이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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