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命題)
이태준
안해가 아이를 가지면 딸일는지 아들일는지는 아직 모르면서도 두 경우를 다 가정하고 미리부터 이름을 지어보는 것은 한 아비되는 이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있어서도 그렇다. 상(想)이 정리되기 전부터 떠오르는 것이 표제요 또 표제부터 정하는 것이 광막한 상의 세계에 한 윤곽을 긋는 것이 되기도 한다. 새하얀 원고지 위에 표제를 쓰는 즐거움, 그것은 훌륭한 회회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고치기는 할지언정 나는 번번이 표제부터 써놓곤 한다. 표제를 정하는 데 별로 표준은 없다. 콩트의 것은 경쾌하게, 신문소설의 것은 신선하고 화려하고 발음이 좋게 붙이는 것쯤은 표준이라기보다 자연스런 일이요 단편에 있어서는 다만 내용을 솔직하게 대명(代名)시키는 데 충실할 뿐이다.
- 출처: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1941)의 「명제기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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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태준 약력
李泰俊. 1904.1.7 ~ ? 강원도 철원 출생. 호 상허(尙虛), 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휘문고보, 일본 조치[上智]대학 수학. <시대일보>에 단편 「오몽녀(五夢女)」 발표, 문단 데뷔. 구인회(九人會) 참여. 해방 직전 <문장(文章)>지를 이병기?정지용과 더불어 주관하다 철원에서 칩거하였으며, 해방 공간에 월북함. 소설집으로 『해방전후』 등 다수가 있으며, 문장론 『문장강화』가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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