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시(夢幻詩) - 오상순
다섯 자 육괴(肉塊) 속에
육의 피는 끓고
영의 불꽃은 탄다.
고통과 번뇌를 못 견디는 나
대령(大靈)의 무형한 공기펌프를 빌어
전신의 피를 모두 다
뽑아 짜내어
투명 순백한 옥화병(玉花甁)속에 넣어
쇠마개로 봉하여
공중에 매단다.
영의 불꽃은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공중으로 타오른다
무슨 원수나 갑으려는 듯이......
독사의 혀와 같은 그 혀로
옥화병을 핥는다.
병 속의 피가 기름같이 끓더니
봉한 쇠마개가 녹아 흘러내려
피에 섞어서 한참
바글바글 끓더니
보라 !
그 - 병구(甁口)에 무슨 꽃 모양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아아, 절미 방순(絶美芳醇)한
백합화 한 송이
우주 창조 시대에
파라다이스 동산에 피었던 그것 같은-
또 보라 !
불꽃의 춤과 탐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백합화는
맹렬하고 아름다운 불꽃의
춤과 곡을 따라 하늘에 떠올라서는
간 곳 없이 자취없이 사라지고
사라진 자국에서 그 모양 같은
다른 백합화가 또 피어오른다.
불꽃의 가는 노래의 리듬을 따라
붓 뚜껑에
비눗물 묻혀 불 때에 모양으로
수없이
피어오르곤 사라지고
사라지곤 피어오르고......
아아, 그리고 또 보라 !
사라져 가는 그 - 백합화 속에
나의 이미지(像)가
레테르같이 몽환(夢幻)처럼 피어난다
아아,
나의 혼도 의식도 꽃 속의 나의 이미지로
옮겨가는 듯하던 순간
내가 꽃 속에서 꿈같은 가운데
희미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니
피와 불꽃의 싸움에
못 견디는 나의 육괴는
흙빛처럼 까맣게 타서
그 꽃에 빗겨 누웠다 !
타오르는 불꽃의 춤을 따라
피는 순간에 사라져 가는 백합화의
애달픈 노래
웃는 가슴에 싸여
수없이 공중에 사라져 가는 흔적도 없이
나의 이미지 !
꿈 ?
...........
환멸의 미 ?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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