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사기라는 네 말을 이젠 부정할 수 있겠다 - 김영산
나는 지난 겨울 영흥에 갔었다 거기서
돌 가져왔지 사람 얼굴 크기만한 돌을
파도 무늬가 새겨진, 고뇌에 찬 얼굴 형상 돌을
내 책상 한 귀퉁이 놓고 날마다 바라본다
그 제단(祭壇) 위에 가끔 향불 피우지
처음 있은 일이지 돌 가져온 것도 이렇듯 기도하는 것도
당신도 내 방에 돌어와 봤을 테니까
보았겠지 돌멩이와 그릇에 담긴 재를
아마 무심히
우리가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처음 있는 일이지
결혼 심육년 째 별거 아닌 별거
가장 가까이서 먼 거리를 본다
수십 번 이혼이라는 말보다
몇 달 째 갑갑한 침묵보다
무심한 백치 같은
눈빛
당신의 고요한 눈빛
나는 병원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지
아내여 나는
수술실에서 보았지
당신 배를 가를 수 있는 데까지 가르고
한무더기 내장을 드러내 보여주는 의사의 손
돼지 뱃속 같은 당신 속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당신은 인공항문을 달았지
그게 복개수술보다 아프고 수치스럽다는 걸 나는 안다
복대로 허리를 친친 감고
넋나간 사람처럼 집안을 걸어다닌다
여전히 직장에 나가 맑은 소리로 라디오 방송을 하고
텔레비전에 나가 밝은 얼굴로 말한다
그러다가 집에 와선 침대에 누워
꿈쩍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당신은 안방에 누워 입을 다문다
나는 영흥에서 가져온 돌을 보고
신령스러운 푸른 빛 감도는
두 눈이 푹 꺼진
콧대는 높고
입은 말한 적 없는
얼굴 형상의 돌을 다시 본다